그대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

by 김무균

언제부턴가 오래된 친구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가 민망하고 어색해졌다. “뜬금없이 연락도 없던 친구가 웬 안부?”라고 할 것 같았고, 안부를 물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연락할 일이 있어도 카톡 문자가 그 일을 대신하거나, “나중에 하지 뭐”하며 하지 않게 됐다. 직접 통화를 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었다. 추측이긴 하지만 통신사 통화량을 조사해 보면 사실로 증명될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는다. 최근 연락이 없었던 친구나 지인이 오랜만에 전화해 오면 ‘상(喪)’을 당한 부음이거나 ‘혼사(婚事)’의 청첩일 확률이 높다. 혹 그 지인이 모임의 총무 일을 보는 사람이라면 모임 참석 요청이거나, 회비 독촉장을 내미는 연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렇다. 그냥 전화해 안부를 묻기가 어렵고 힘들어졌다.


전화나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던 예전에는 친지나 지인들에게 어떻게 안부를 물었을까? 아마 인편으로 부치는 편지가 그 일을 대신했을 것이고, 유일한 수단이었지 싶다. 로마 공화정 시대의 카이사르나 키케로 같은 인물들은 무척이나 많은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다양한 편지들로 인해 로마사가 더욱 세밀하고 풍부해졌다. 우리의 경우도 살펴보면 오래전 편지가 적지 않게 남아있다. 들은 바가 적은 탓에 조선 이전의 삼국이나 고려 때의 기록은 알지 못하겠으나(당연히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조선시대는 양반 관리나 학자들의 편지를 묶어 편집한 책도 출간되어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편지 하면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명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편지도 꽤나 많다. 아래 편지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사온서’(司醞署, 궁중에서 쓰는 술과 관련된 일을 맡은 관아)의 ‘이 직장’(李 直長, 이 씨 성을 가진 직장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 집으로 부친 편지글인데, 조정의 관리가 약에 쓸 청주 반 병을 구하지 못해 애를 써는 모습에서 이이와 조선시대의 안타까움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그립습니다. 벼슬하느라 고생하고, 병이 많아 사람 도리를 모두 폐하였으니 안타깝습니다. 여기에서 말씀드리기 매우 죄송합니다만, 지금 막 약을 짓고 있는데 청주 반 병이 꼭 필요합니다. 사방으로 구해보았으나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혹 구하여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살펴주시리라 생각하며 삼가 서신 올립니다. 이(珥) 올림.”


아래 글 또한 추사 못지않게 다수의 편지를 남긴 퇴계 이황(1501~1570)이 지인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글이다. 그 지인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퇴계 이황이 지인에게 보낸 안부 편지.


“소식이 격조하여 그리워하던 중에 지금 아드님을 통해 편안히 지내신다 들으니 매우 위로가 됩니다. 저는 괴롭게도 감기에 걸려 벗어날 계책이 없습니다. 마음에 품은 일은 어긋나는 일이 많아 날로 고민이 됩니다만 필설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공께서는 수년 동안 남쪽으로 오시지 않으니 얼굴 볼 날도 기약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아드님이 마침 서울로 간다고 하기에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여러 가지로 잘 되시기를 바라면서 삼가 안부를 묻습니다. 을축년(1565년) 답청일. 황(滉) 올림.


이런 편지도 있다. 1998년 4월 분묘 이장을 하던 안동의 무덤에서 한 남자의 미라와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연서(戀書) 한 통이 발견됐다. 4백 년 전 ‘원이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응태. 1556~1586)에게 보낸 편지다. 병술년 유월 초하루 이 편지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의 병술년은 1586년이고, 이응태는 이해에 죽었다.” 편지글은 조두진의 작가의 소설 ‘능소화 400년 된 편지’에서 발췌했다.


“바람이 불어 봄꽃이 피고 진 다음, 다른 꽃들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 능소화는 붉고 큰 꽃망울을 터뜨려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산짐승과 들짐승들이 당신 눈을 가리더라도 금방 눈에 띌 큰 꽃을 피울 것입니다. 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 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주세요.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안부를 묻자면 며칠씩 걸렸다. 아니 몇 달이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안부를 전할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또 그곳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쉬지 않고 하루에 백 리를 걸어도 부산서 서울까지 열흘에서 보름은 걸리는 거리다. 안부를 묻기가 이처럼 어려웠다. -그만큼 안부를 묻는 편지일지라도 진솔하고 품격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과 내용의 문제로 안부를 묻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전화가 나은지, 문자로도 괜찮은지, 때는 적절한지, 혹시 오해할만한 내용은 없는지, 할 말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래서 어쩌면 안 하니만 못한 안부도 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뜬금없이 오래된 지인 생각이 났다. 어떻게 살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핸드폰의 문자를 누르려다, 전화를 걸려다 머뭇거렸다. 자식들의 혼사가 있을 나이고, 장인·장모님과 작별이 있을 나이인 데다, 은퇴한 지 오래된 백수 한량이었다. 그래, 이러다 서로에게 잊히고 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 그대에게 안부를 묻는다. 한 해가 다가는 연말이고, 곧 새해가 온다.


“Comment ça va!, 별일이 있어 연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 건강하고, 가내 무탈하냐.? 나는 요즘 책도 읽고, 글도 쓰며 흐르는 시간과 함께 한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쓰는 만큼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가기 위해서다. 백수의 삶이란 게 매일 같은 날들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특별한 날도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자주 연락하고, 한번 찾아간다 하면서도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미안하다. 일간 시간 맞춰 밥이라도 한번 먹자.”


※작가노트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의 폭을 줄이고, 깊이를 깊게 하라는 말이 있다. 관리의 문제도 문제지만, 경제적 육체적으로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 굳은살이 박여 정서적으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서로 주고받을 도움도 사실 별로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폭넓은 인간관계를 지속하자면 비용 또한 동반될 수밖에 없다. 몸의 세포도 생기는 숫자보다 죽어가는 숫자가 많아지고, 하루가 다르게 근력도 가늘어져서 신체적 활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의 폭을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안부를 물을 사람도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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