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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Nov 17. 2021

금곡공원에서....

모래를 파지 않는 한 물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곡공원 양안(兩岸) 사이로 탄천이 흐르고 물결을 거슬러 잉어떼가 헤엄친다. 천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 입구에서 한때 길조(吉鳥)였던 까치가 뒷짐을 진채 잉어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까치는 잉어를 먹이로 보고 있을까? 나는 까치가 아니어서 까치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잉어의 마음은 알것 같았다. '까치여! 나는 너의 먹이가 아니다.' 지난번 잉어떼 속에서 긴다리를 뒤로 굽히고 물속의 먹이를 찾던 왜가리는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산으로부터 안개가 내려와 가는비처럼 흩뿌렸다. 바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걷거나 달리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근육을 키우고 있었는데, 사람을 따라 나온 무척 고귀한 족속의 다리 짧은 개, 털이 길고 주둥이가 튀어나온 개, 털이 곱슬곱슬하고 눈이 까맣고 동그란 개들은 한쪽 다리를 들거나 잡초를 뒤적이며 스스로의 본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공원의 의자, 혹은 벤치 아래서 잿빛 비둘기가 모래, 또는 흙 사이에서 모이를 찾고, 흰 비둘기는 돌을 깎아 만든 의자 위에 똥을 쌌다. -똥은 한쪽은 희고 또 한쪽은 잿빛이었다. 그 똥은 독성이 있어 사람이 만든 무엇이든 삭게 해 약하게 만들지만 자연이 만든 모든 것과는 함께 썪어 거름이 된다.- 팔굽혀펴기를 하려고 의자에 손을 짚다가 그 똥을 짚었다. 먼곳을 잘 보는 눈은 바로 아래 의자 위의 새똥은 보지 못했다. 노안(老眼)의 치명이었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비둘기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날개를 퍼득이며 빠른 걸음으로 잠시 자리를 피할뿐,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는 비둘기들에게 사람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손에 묻은 똥은 씻고 손을 말렸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한뼘 옆으로 지나갔다. 굵고 진한 땀냄새가 전해졌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그보다 빨리 두뼘 곁을 지나갔다. 땀냄새는 전해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금방 지나쳐 앞서가기 시작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좁은 시멘트다리 아래의 잉어떼가 궁금해졌다. 잉어떼는 아직도 물결을 거스르며 헤엄치고 있었는데,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는 오래전 책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났다. 잉어떼는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어느 노동절 휴일, 집에서 한참이나 먼 분당의 금곡공원에서 아들의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한시간 반 동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한 나의 시간은 모래속으로 스며든 물같아서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모래를 파지 않는한 물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설명 : 금곡공원 탄천을 거슬러 헤엄치는 잉어떼들. 중국 전국시대 장자와 혜자의 고사를 생각하다 어차피 물고기가 아닌다음에야 그 뜻을 어찌 알까? 물 속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박수근의 그림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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