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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Dec 01. 2021

위례, 십일월 담배

금연만큼 쉬운 것은 없다. 나는 매일 끊어 와서 수백 번도 더 끊었다.

을 오르지 않거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은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운동을 대신한다. 산도 오르지 않고 헬스장도 찾지 않은 어느 날 늦은 밤,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군데군데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대개 아파트를 경계 짓는 철책-여름이면 덩굴장미와 찔레가 철책을 휘감고 한가득 꽃을 피운다.-앞에서, 혹은 사람의 눈길이 잘 미치지 않고 달빛 그늘이 져 어두운 나무 아래서, 또 혹은 건물 모퉁이나 옹벽 아래 서서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맨 발로 슬리퍼를 신은 체 담배를 피운다. 게 중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뒤돌아서서 급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이 지나건 말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 옆을 지날 때마다 흡연실에라도 들어선 듯 훅하고 다가오는 담배연기와 그 냄새가 싫어 고개를 돌리고 호흡을 멈춘다. 그리곤 ‘아, 좀 다른 곳에 가서 피우지’라거나, ‘어디 아파트 단지 내에 흡연실 하나 만들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2년 하고도 4개월 전, 34년 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만큼이나 담배를 끊게 된 이유도 간단했다. 사무실을 벗어나면 전신에서 땀이 샘솟듯 솟아나던 2년 전 7월의 여름 어느 날, 깨져서 시리고 아픈 어금니를 임플란트로 대체하겠다는 오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사무실 아래에 있는 치과-이미 상한 어금니 하나를 금니로 바꿔먹은 전력이 있는 치과다.-에 가 어금니를 뽑고 그 빠진 자리를 레진(Resin, 수지)으로 메꾸었다. 그리고 이제 어금니를 뽑는 용맹무쌍한 과업을 달성한데다 오전 내내 금연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흡연자들이 모여 있는 건물 모퉁이로 돌아가 담배를 한 개비 피워야 할 터였다. 그런데 그 순간 ‘뭐 어금니 사이에 불편한 이물질(?)까지 끼우고 있는 이런 상태에서 꼭 담배를 피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곤 그 이후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며칠은 가치假齒(어금니를 뺀 자리에 끼우는 임시 치아)에 배는 착색과 냄새가 신경 쓰여 피우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는 그동안 피우지 않은 시간이 아까워서 피우지 않았다. 남들은 금연 약을 먹고, 금연 패치를 붙이고, 금연 껌을 씹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못 끊는다는 담배를 나는 그날 이후 아주 그냥 싱겁게 끊어버렸다. “금연만큼 쉬운 것은 없다. 나는 매일 끊어 와서 수백 번도 더 끊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정말 담배 끊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는 더 간단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을 갓 입학한 어느 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재수 끝에 입학한, 코 밑에 솜털이 뽀송한 과 동기 몇 명과 다방인지 커피숍인지 모를 어디서 몇 번 마셔보지 않은 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누군가(그 친구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여기서 실명을 공개하기는 좀 그래서 그냥 ‘누군가’로 하겠다.) 담배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필터 부분을 몇 번인가 톡톡 치더니 성냥불을 붙이고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누군가’ 왈 “너는(실제로는 내 이름을 불렀다.) 안 피냐?” 하기에 “안 피우긴, 야, ‘누군가’ 한 대 줘 봐”하고 담배를 피우게 됐는데 그것이 내 흡연의 시초였다. 그 이후로 참 줄기자게 담배를 피웠다. 소싯적에는 하루에 한 두 갑, 연세가 좀 들면서는 하루에 반 갑, 술자시면 두 갑 쯤 피운 것 같다. 중간에 한 번 담배를 끊은 적이(2015년인가 신년이 되면서 직장동료와 함께 1월 1일부로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하고 5개월 간 담배를 안 피운 적이 있다. 순전히 내기 때문이었다.) 있긴 하지만 남들이 열두 번 끊고 열세 번 피운다는 담배를 난 별 생각 없이 34년간이나 줄기차게 피워 왔다. 누군가 금연에 대해 말할라치면 늘 물부리를 물고 있었다는 공초 오상순, 눈을 찌푸리고 한 쪽 입 꼬리를 밀어올린 체 담배를 물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한 순간도 시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처칠, 심지어 지극한 애연가였다는 정조 임금님까지 소환하며 흡연의 즐거움과 당위성을 옹호하고, 금연이 불러올 무락無樂에 대해 역설하기도 했다.


그랬다. 담배를 끊으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즐거움(樂)이 없을 줄 알았다. 밥 먹고 나면 뭐하나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끊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담배는 그저 습관이었고, 피우나 안 피우나 똑 같았다. 오히려 기침과 가래가 줄고, 무엇보다 온 몸에 배어 있던 담배 냄새가 사라져 좋았고, 담배와 라이터로 불룩했던 주머니가 가벼워져서 좋았다. 처음엔 어디 둘 곳 없는 손에 좀 난감하긴 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고나니 금세 익숙해졌다. ‘즐거움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담배에 있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담배연기煙氣를 인으로 즐거움이 기한다는 연초제조창 발 연기론煙氣論이 아닌,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진정한 연기론緣起論으로 원효대사께서 말씀하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정수였다. 금연을 함으로써 나는 또 다시 한 깨달음을 얻었다.


잠시 담배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사이, 아파트를 가르는 철책을 뚫고 철책 밖을 서성이던 바람이 철책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을 맞은 느티나무, 대왕참나무, 튤립나무, 벚나무, 느릅나무, 단풍나무의 작고 큰 활엽수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소설小雪을 지난 11월은 이처럼 스산하고, 그날 ‘누군가’와 함께 피우던 한 개비 담배가 난 그리웠다.


『                                                      미와 담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데, 쓰레기더미에서도 장미꽃은 피는가? 늦은 저녁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아파트 쇠창살 경계 안에서 던힐 3mg 담배를 핀다. 쇠창살을 타고 덩굴장미가 푸르게 자라 피처럼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장미꽃은 푸른 달빛을 머금어 보라색으로 빛났다. 나는 담배 연기를 폐 속 깊이 들여 마셨다가 내 몸속 노폐의 독소와 함께 장미꽃에 뿜었다. ‘이것은 나의 오래된 숨이다. 너는 쓰레기더미에서도 핀다고 했으니 담배 연기쯤이랴.’ 햇볕과 바람과 비를 먹고 자라는 장미는 오늘 아파트를 가르는 쇠창살 경계에서 담배 연기를 먹고 장미꽃을 피운다. 이제 장미는 더 강해질 것이다. 몇 미터 떨어진 쇠창살 안 저곳에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보다 먼저 나온 그는 다 피운 담배의 불똥을 장미꽃에 튕겨 떨고 꽁초를 쇠창살 경계 밖으로 던졌다. 그때 누군가 아파트를 등진 내 뒤를 지나갔다. 난 뒤돌아보지 않았다. 장미는 담배 향기를 뿜었고 담배꽁초는 이미 버려졌다.


                                                             <이 詩는 금연을 하기 전인 2019년 6월 어느날 쓴 것이다.>』




P.S. 어쨌든 11월은 With 코로나의 시작이었다.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고, 모두들 또 그렇게 반겼다. 그동안 Without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With가 다시 코로나의 번성과 번창을 부르자 Without이 재논의 되기 시작했다. “with me, without me.” 영화 ‘나잇 & 데이’에서 톰 크루즈(밀러)가 “나와 함께 하면 이만큼-눈 높이다-살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이만큼-무릎 높이다-산다.”고 카메론 디아즈(준)에게 말한다. 둘은 모두 With함으로 살아남아 멋진 차를 타고 남쪽 대륙의 끝, 케이프 혼으로 떠난다. With코로나의 시대, 과연 우리의 With는 어디가 그 끝일까? 그리고 그 With의 끝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밀러를 불러 한 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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