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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Nov 02. 2021

위례, 시월 多忙 혹은 단풍

제 곧 ‘개와 늑대의 시간 The time between dog and wolf’입니다. 서재에 들어가 몇 해 전 산 책 하페 케르켈링의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와 한 달 전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산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 그리고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을 책꽂이에서 꺼내 책상 위에 얹어놓습니다. 책상 위에는 이제 곧 읽기가 마쳐질 요나스 요나슨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가’ 이미 놓여져 있습니다. 이 책은 500쪽이 좀 넘는 두껍다면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분량에 비해서는 좀 과도하다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책상 위에 있습니다. 책 읽기가 급할 것도 없는데다 작가의 문장 구사 솜씨가 워낙 제 취향에 맞아 일부러 조금씩 아껴 읽으며 진도를 늦게 나갔기 때문인데, 그래도 한 달은 독서가에게 길다면 좀 긴 시간입니다. 세스 노터봄의 “하느님도 점심을 먹고 나서는 주무신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500만 부를 판매했고, 독일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나의 산티아고’의 원작인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Ich bin dann mal weg’는 “돌이켜 보면 길 위에서 신은 나를 끊임없이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날마다 우리는 마주쳤다.”라는 작가의 프롤로그처럼 길 위에서 신을 만나고 깨달음을 찾는 한 순례자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일 것’이라는 것은 아직 제가 이 책을 다 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책을 사서 처음 30여 쪽을 읽다가 그만두었는데, 아마 그 시기 다른 재미있는 어떤 다수의 일들이 제 주위에서 벌어지지 않았나 하고 유추해 봅니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유명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입니다. 1980년 미국으로 망명해 의사와 작가로서의 생활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탈레반 치하에 다시 놓인(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다시 장악했습니다.) 아프간인들을 국제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는데 “소설로 한 나라를 이해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아프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소설을 읽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그의 전작前作들에서 큰 감명과 감동을 받은 저로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마 한참을 더 지나야 제 독서대에 얹혀질 것입니다. 아직은 그의 때가 아닙니다. ‘떨림과 울림’은 잘 모르겠습니다. TV의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작가에게서 어떤 신뢰, 선한 이미지, 자신의 학문에 대한 사랑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그의 이해하기 쉬운 과학 설명처럼 책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하여튼 책들을 책상위에 얹어놓고는 바로 집을 나서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아파트와 아파트를 가르는 도로와 아파트 사이에 작은 수로가 있습니다. 지난여름 내내 물이 흐르지 않아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아니 어쩌다 한 번 씩 물이 흐르긴 했습니다.-요즘은 매일 매일 물이 흘러내리는 수로를 봅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고, 물이 흘러내리는 모양도 보기 좋습니다. 무더웠던 지난여름에 좀 더 자주 물이 흘러가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수로 옆에는 여름내 푸르던 화살나무가 빨갛게 단풍이 듭니다. 산수유나무도 작고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습니다. 그 옆의 산딸나무는 빨간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갈색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군데군데 자라는 아이리스는 길고 푸른 잎을 한껏 세우고 있습니다. 보라색 꽃이 진 지는 오래전 일입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뒷짐을 지고 느긋이 산을 오릅니다. 산길은 온통 가을입니다. 며칠 전까지 소복하게 탐스럽던 하얀 서양등골나물 꽃, 망초 꽃도 어느덧 갈색으로 시들기 시작했고, 보라색 꽃을 피운 꽃향유도 이제 그 시간을 다하려 합니다. 작은 포도송이 같은 좀작살나무 보라색 열매는 줄기와 나뭇잎 사이에서 아직은 이별할 때가 아니라며 버티고 있습니다.

아파트와 아파트를 가르는 도로와 아파트 사이를 흐르는 수로

산을 오르며 지난 한 달을 되돌아봅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분주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지금 신고 산을 오르고 있는 등산화 밑창을 수선하기 위해 두 차례나 브랜드 매장을 방문했고, 자동차 정비소에 가 한동안 야간 운전을 불편하게 했던 자동차 전조등을 교체했습니다. 어느 날은 집안 한 구석에 쌓여있던 사진액자와 그림들을 꺼내 닦고 다시 방 안에 걸거나 세워두었고, 가끔은 친한 지인들을 만나 밀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오랜 만에 오래전 자주 다녔던 어느 곳에서 후배를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9년 만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조경에 대한 생각 차이로 관리사무소와 긴 통화를 하며 다투기도 했고, 아내와 함께 동네 영화관에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007 노 타임 투 다이’라는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오랜 만에 우체국에 가서 시집 몇 부를 몇 분의 지인에게 편지를 쓰듯 소포로 보냈습니다. 아쉽게도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희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이 있는 우체국은 아니었습니다. 장모님 생신을 맞아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아, 물론 준비는 아내가 했습니다. 그리고 장인·장모님 두 분 다 백신 접종을 마쳤고, 저와 딸도 접종을 모두 마쳐 정부의 집합 관리 지침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아들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이런저런 이유로 의도치 않게 코로나 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아, 물론 음성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병원에 가서 또 정기적인 진료를 받았고(십 수 년 전 가슴을 열고 심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병원에 가서는 또 다른 이유로 고농축 철분주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세면대 배관을 뜯어 청소를 했으며, 신발장에 방치되어 있던 운동화들을 꺼내 세탁을 했습니다. 날씨가 흐린 어느 날에는 이사할 때 들여놓은 소파의 천을 벗겨내 세탁을 했고, 불량 처리된 아들의 농구화를 교환하러 도심의 매장까지 나가기도 했습니다. 사이사이 남한산성 남문을 두 번 올랐고, 수시로 뒷산 마루턱까지 산행을 했으며, 자주 헬스장에 가 운동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상가喪家에 들러 조문弔問을 하기도 했고, 코로나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아파하는 아내를 간호(?)하며 함께 여러 번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인한 아내의 통증은 온 몸을 돌아가며 근 두 달 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아들을 등·하교 시키는 일과 그 아들이 병원을 가는 일과(아들이 얼마 전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지며 큰 타박상을 곳곳에 특히, 허리에 입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틈틈이 짬짬이 다수의 집안일들을 해야 하는 10월의 제 다망多忙은 모두가 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단지, 이 시기 모든 것이 다망多忙해 늘어났으나, 물적·정신적 자산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해 자산의 대폭적인 감소를 가져옴으로써 백수한량의 앞날을 심히 암울하게 했고, 한 권의 책도 완독完讀하지 못한 관계로 감가상각으로 인한 지적자산의 자연 감소분 또한 상당량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난독難讀, 난청難聽, 문해력文解力의 결핍까지 겹쳐 지적자산은 그 궁핍하기가 흥부네 집 쌀독과 같아지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실로 뼈아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 산 능선이 희미하고 산허리가 어두워져 갑니다. 이제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개와 늑대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산길을 서둘러 내려오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의 시월은 이렇게 다 가고 말았는데, 나의 11월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11월에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하루키가 그의 오래된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에서 한 말입니다. 어느덧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입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핼러윈 데이를 즐기는 아이와 엄마들이 보입니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은퇴 후 계획했던 산티아고 길 순례는 이제 책 속에서나 찾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키의 말처럼 이제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한데, 또 그러면 어떻습니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했는데, 책 속에서 가을, 길을 찾아보렵니다. 아니면 그 길밖에 없기에....어디선가 ‘시월의 마지막 밤’이 들립니다. 클리셰.


※핼러윈 데이(Halloweenday) : 만성절(萬聖節, All Saint Day, 그리스도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새해와 겨울의 시작을 맞는 날로 아이들이 괴상한 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과자나 음식을 얻어먹는다. 고대 켈트 민족의 풍습에서 유래했다.(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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