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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Dec 21. 2021

위드 코로나 유감(有感)

름날 고춧잎에 진딧물 달라붙듯, 없는 집에 사채 이자 늘어나듯 코로나가 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야심차게 추진했던 위드 코로나 정책은 마이크에 침방울도 마르기 전에 회수되어 창고 속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코로나 4단계 조치가 새해 1월 2일까지라고는 하나 예상컨대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당분간은(얼마 동안 일지 모를)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 코로나 확산에 따른 방역조치 강화를 백성들에게 알리는 조정의 포고문을 접한 친구가 오래전에 열어놓았던 단톡방에 들어와 열심히 손가락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목하(目下) 시국이 이러이러하니 다음 주에 있는 우리의 모임을 이러이러한 일이 해결되고 난 이후로 연기하는 것이 어떠한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베이징에 사는 작은 나비 날갯짓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미국에서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임은 연기되었습니다. 오랜 설렘으로 기다리던 만남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주향천리(酒香千里)라 했는데, 친구가 손수 담갔다는 가양주 막걸리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친구는 거리두기가 끝날 때쯤이면 새로 만들어 놓은 삼양주가 익을 것이니 언제든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합니다.(음~ 사무실까지 있군요. 친구가 은퇴하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다기에 진짜 집에서 노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무실까지 있는, 백수한량과는 격이 다른 유희를 하고 계십니다.)  다른 친구가 보기에 좋다며 거문고와 시만 있으면 삼혹호(三酷好) 선생(李奎報, 고려의 문신·문장가, 1168~1241)에 버금가겠다고 농을 합니다. 그 사이 저는 인터넷에서 삼혹호 선생을 찾아 그의 한시 하나를 올립니다. ‘영정중월(詠井中月, 우물 속의 달을 노래하다)’이라는 오언절구입니다.

2017년 10월 어느날, 춘원 이광수의 고택 '춘원헌'에 있는 우물입니다. 이 집에는 지금 대학에서 훈장 일을 하는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우물에는 달이 없습니다.

山僧貪月光(산승탐월색) 상승이 달빛을 탐하여

倂汲一甁中(병급일병중) 병 속의 물과 함께 길어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으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 기울이면 달빛 또한 텅 비는 것을.


친구 덕분에 우연히 한시(漢詩) 하나를 공부하게 된 아침입니다. 가만히 소리를 내어 읽어보고, 마음속으로 그 뜻을 음미해 봅니다.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근심도 욕심도 사라집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심경 한 구절입니다. 나무코로나보살마하살.




※가양주(家釀酒) : 집에서 담근 술

※삼양주(三釀酒) : 3차 담금에 의한 곡주의 제조방법

※시 두 번째 행의 병(甁 )이 호(壺)로 나오는 자료도 있습니다. 저는 병 자가 맞는지, 아니면 호 자가 맞는지, 어떤 글자가 이규보가 처음 ‘영정중월’에 쓴 글자인지는 잘 모릅니다. 단지 아는 것은 그저 호 자가 술병 호자라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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