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균 May 06. 2022

오월, 위례 해방

2년 만에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2년만입니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구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간단하게 양치만 하고 산을 올랐습니다.

이팝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양쪽으로 늘어선 길을 걷습니다.

오늘이 휴일이어서 인가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아파트 사이길을 따라 걷다 산의 초입에 들어섭니다.

한 켠에 보라색 화사한 꽃을 피운 붓꽃의 꽃대가 싱그럽습니다.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산기슭에는 노란 애기똥풀이 제 철을 만났고,

보라색 현호색은 아직은 내 시간이 남았다며 버팁니다.

순간, 꽃 냄새, 나무 냄새, 흙 냄새, 바람 냄새가

비강鼻腔을 거쳐 가슴 속으로 '훅' 하고 스며듭니다.

아찔합니다.

정말 2년만입니다.

저는 지금 마스크를 벗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 되고 처음 오르는 산입니다.

아파트를 나서면서 혹시나 몰라 마스크를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주머니에 넣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저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 귀에 건 사람, 턱에 걸친 사람, 손에 든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직은 왠지 마스크를 벗기가 어색하고 불안한 것일까요?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산길을 걷다가

잠깐 전망대가 있는 쉼터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립니다.

호흡이 골라지고 땀이 잦아듭니다.

전망대 공원 한 켠에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꽃이 흐드러지고, 향기가 진동하려면 아직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청량산을 넘어온 햇볕이 따스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모금 받아 들이마십니다.

온몸에 햇볕의 모든 따스함, 아침 공기의 청량함이 가득 베어듭니다.

눈을 감고 그렇게 잠시 있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등산로를 따라 걷습니다.

등산로 한곳에서 물푸레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또 한곳에서는 붉은병꽃나무가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제 오르막입니다.

조선시대 관리 세 사람이 선정을 펼친 것을 잊지 않겠다는 불망비不忘碑를 지나갑니다.

오르막을 올라 한참을 더 가야 오늘의 종점인 남한산성 남문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청아한 새소리가 요란합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산새들 소립니다.

새들 이름은 꽃이나 나무 이름처럼 잘 알지 못합니다.

능선의 정상을 지나 도로와 닿아 있는 등산로를 지납니다.

떼죽나무 하얀 꽃이 지려는 곳에

팥배나무가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웁니다.

절정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至和門이 나옵니다.

남문은 병자년(1636년 12월 14일 자정 무렵)에 조선 16대 왕 인조가 청병을 피해 산성으로 들어온 문입니다.

인조는 산성에서 47일간 농성하다 홍타이지에게 항복했습니다.

남문 앞 500년 된 느티나무의 나이테에 그날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남문 문루에 올라 성 밖을 바라봅니다.

등산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기도 하지만, 손에, 귀에, 턱에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너무도 오래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성벽을 넘은 바람이 마스크를 벗은 코와 입을 거쳐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바람에서 꽃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 풀냄새가 납니다.

아찔합니다.

저는 마스크를 벗고 있습니다.

2년 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지 어디 멀리 있어서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