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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Jan 09. 2024

1월 위례, 신년목표

입은 부드럽고, 귀는 순하며, 생각은 고요하고 맑아 깨끗하다

년 오늘엔 아차산을 오르며 새해를 맞았다.

나는 그 일이 아직 어제 일 같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새해를 맞았다.

어제, 인왕산 해돋이를 보며 새해를 맞자는 지인의 제안을(정말 함께 하고 싶었다) 개인사를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한다고 했다.

개인사는 새해 스무살이 되는 아들과의 자정 음주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들과의 음주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고,

밤을 새우리라던 계획은 우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어설픈 음주 때문인지 밤새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늦게 일어났다.

머리가 아프다는 아들을 꾀어 함께 집 뒤 영춘산(청량산) 전망데크에 올랐다.

(어쨌든 오늘은 새해 첫날이었다.)

산성 남문까지 가고 싶었으나, 눈길이 미끄러웠고 아이젠은 집에 있었다.

데크에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주 개인적인 올해의 소원들을 빌었다.

소원 중 어떤 성취는 내 노력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었으나,

어느 경제학자는 인생의 80%가 운이라고 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니 반성할 것 투성이였다.

나는 지난해 나의 생활 목표를 '회복'에다 두었었다.

그 회복은 백수의 결손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복'이었다.

관계의 회복, 자산의 회복, 지식의 회복, 관심의 회복, 권위의 회복, 자신감의 회복, 위치의 회복..., 그리고 자유, 기본, 평상심 등등으로의 회복이었다.

그리하여 지난 한 해, 회복으로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하지만 오늘 생각해 보니 지난 한 해 '회복' 보다는 '상실'이 더 컸다.


관계는 더 많이 악화됐고, 독서와 지식은 턱없이 줄어들었으며,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도 둘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권위는 사라졌고, 자신감은 멘틀을 거쳐 지구의 핵까지 파고들 기세였다.

자산은 일부 회복됐으나, 갈 길이 멀었고, 소비는 몸무게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자유, 기본, 평상심의 회복은 차라리 언감생심이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복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의 상실, 그 한 해 속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무능과 무지와 무기력...., 오만, 허세, 체면 등등의

개선되지 않고, 고쳐지지 않는 허울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성反省했다.

그리고 나는 반성한다.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또 어쩌란 말이냐!

지나간 일은 기억에 새겨져 꿈쩍도 까딱도 않는데.


그리하여 또 나는 어제,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것들이고,

올해 나의 생활 실천 태도 몇 가지를 정했다.

'口柔, 耳順, 思靜'이 바로 그것이다.

'입은 부드럽고, 귀는 순하며, 생각은 고요하고 맑아 깨끗하다.'

(이 얼마나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삶의 목표인가?)

지난 한 해 나의 입은 거칠었고, 귀는 닫혀 있었으며, 생각 또한 얼마나 시끄럽고 오염돼 있었던가?,를 생각하니 이 단어들이 더욱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이 단어들로 올 한 해를 시작하고 마치려 한다.

이 목표가 지난 해 목표처럼 또 그렇게 허투루 지나갈 지 모르지만

시작해 보는 것 또한 나름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한만큼 최선을 다해 실천해 나갈 생각이다.



황정견 自讚(北宋, 1045~1105, 시인)


사승유발(似僧有髮, 스님같지만 머리카락이 있고)

사속무진(似俗無塵, 속세에 있지만 티끌이 없네)

작몽중몽(作夢中夢, 꿈 속의 꿈을 꾸어)

견신외신(見身外身, 몸 밖의 몸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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