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20p)
지방선거 하루전날은 화요일이었고, 특별하게 다른 일정이 없었다. 그동안 회사 인근 서점을 몇 번 갔으나 딱히 살 만한 책이 없어 구경만 하다 왔다. 오늘은 몇 권 책을 사리라는 마음을 먹고 서점을 들렀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김주대 시인의 ‘시인의 붓’이라는 책은 역시 재고가 없었다. 카운터에서 예약주문을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김주대 시인은 나와 일면식이 없지만 동향 사람이고,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전공을 했고, 같은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신문에 나온 그의 책 광고를 보고 한번 사서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아, 대단한 고향 사랑이다.) 대신 이리저리 서점을 둘러보았다. 필기구 코너도 둘러보고, 신간 코너도 둘러보고, 베스트셀러 코너도 둘러보았다. 필기구는 가지고 있는 것도 벅찼고, 책은 마땅히 마음이 끌리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의무감으로 몇 권 책을 사기로 했다.
제일 먼저 유홍준의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山崇海深’를 골랐다. 몇 번이나 망설인 끝의 선택이었는데 추사에 대해 공부해 볼 작정이었다. 두 번째로 고른 책은 조남주의 ‘그녀 이름은’이었다. 나는 지난해 이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아주 의미심장하게 읽었고, 여러 사람에게 추천도 해주었다. 세 번째 고른 책은 건축학과 교수인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였다. TV에서 이 분이 강의하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건축물에 대해 도시에 대해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설명을 해서 나중에 관련된 책을 한번 사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좋게 말하면 지적 호기심이었고, 달리 말하면 지적 허영이었다. 건축과 도시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좋아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서가에서 뽑았다.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른 선택이었다. 두 곳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었는데, 번역문을 대조해가며 어느 책을 고를까 꼼꼼히 살폈다. 하나는 원문 번역에 충실한 듯 했고, 다른 하나는 문장을 압축해 의미를 전달하는데 더 무게를 둔 듯 보였다. 나는 두꺼웠으나 판형이 좀 더 작고 번역이 압축된 책을 골랐다.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는 몇 번이나 들었다가 제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순전히 판형과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오래전 나는 이 책을 문고판으로 읽다가 만적이 있었다. 이제 계산을 하고 서점을 나오면 서점에서의 의무는 끝날 터였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몇 번이나 보았으나, 별 관심이 없었고, 뭐 저런 제목의 책이..., 했던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갑자기 내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이 책을 사게 되었다.
가장 쉬워 보이는 책부터 가장 먼저 읽기로 했다. 원래 공부하는 순서가 그런 것이다. 어려운 것부터 시작하면 늘 처음 그 자리에 있기 마련이다. 내게 가장 쉬워 보이는 책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가벼운 글인데도 무게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무게를 위트와 유머가 살며시 쥐고 흔들어 오히려 재미있었다. 명언으로 가득 찬 밀란 군테라나 미셸푸코, 파울로 쿠엘료, 혹은 헤르만 헷세, 오쇼 라즈니쉬와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굳이 찾아 읽으며 엄숙을 떨 필요가 없었다. 이 책에도 그런 명언이 차고 넘쳤다. 읽을수록 작가의 인생살이에 대한 내공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작가는 백수 3년 동안 소설가를 꿈꾸며 소설도 몇 편 썼고, 그림책도 만든 적이 있었다. 읽는 내내 작가가 글을 너무 잘 써 내력이 궁금했으나, 작가에 대한 다른 기록들은 찾기가 어려웠다. 미대 출신이(작가의 글 속에 4수를 해서 홍익대 미대에 들어간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글을 잘 쓰면 국문과 출신도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해 질투가 났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우리의 일상, 그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고민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미안한 마음 하나 없이 턱 하니 꺼내놓고 있다. 어떨 때는 본문보다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카피가 훅 하고 가슴에 더 다가올 때도 있었다. 무거운 것은 가볍게 넘기고, 가벼운 것은 살을 덧대어 무게를 실었는데, 하루 이틀 만에 나온 글은 아닌 듯싶었다. 전체적으로 적당한 양에 적당한 온도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고 불편한 명품이 아니라 정갈하면서도 몸에 맞아 편안한 옷 같았다. 3시간 만에 책읽기를 마쳤다. 시간을 내어 한 편 한 편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었다. 야매 득도得道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