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나쓰카와 소스케
이름도 몰랐을 책이었다. 얼마 전 책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지인 한 분이 이 책을 보내왔다. 퇴근 시간이 지나 사무실 건물을 막 나서는데 퀵서비스 하는 분의 전화를 받고 돌아와 회사 건물 앞에서 책이 든 종이 가방을 전달받았다. 가방 속에는 두 권의 책이 있었는데, 다른 한 권은 일제강점기시대 작가인 김사량(金史良, 본명 金時昌)의 삶을 조명한 ‘다시, 빛 속으로’란 책이었다. 이 책은 사회학자인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쓴 책으로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가 쓴 첫 소설은 ‘강화도’인데 이 책도 나는 이 분에게서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빛 속으로’는 김사량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1939년 쓴 소설이다. 1940년 아쿠다가와芥川 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지만 반도인半島人이란 이유로 김사량은 이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나는 대학시절 한때 임화林和에 빠져 있었고, 그때 한동안 김사량에 대해서도 공부한 적이 있었다. 1914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사량은 일본에서 생활하다 1945년 중국을 거쳐 그해 11월부터 북한에 들어가 활동했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을 따라 종군해 마산까지 내려갔는데,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들이 후퇴할 때 따라 북상하다 원주 부근에서 죽었다. ‘서울서 수원으로’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등 많은 종군일기들을 썼다. 그가 우리 문학계에서 이름이 묻힌 이유는 임화와 같다. 그 역시 사상이 북쪽에 있었고, 그 체제에 맞는 많은 글을 썼다.
6월의 첫 주, 일요일이 저물어 갈 무렵 무위도식했던 하루를 반성하며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있던 이 책을 펼쳤다. 책은 판타지였다. 고양이가 말을 하니 당연히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양이가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이 책을 덮으려 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320만 부가 팔렸다는 출판사의 선전 문구는 그냥 일본 독자들의 특성이려니 했다. 일본 독자들은 고양이가 나오는 책을 무척 좋아한다. 아마 그 시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일 것이다. 세 달 전 나는 이 책을 모두 읽었다. 읽는 데만 거의 5~6개월이 걸렸다. 그만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책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다른 책을 읽고 있었고, 내게는 너무 지루한 이 책을 나는 목표의식 속에서 아주 틈틈이 몇 페이지씩 읽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지적 허영으로 이 책 읽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실패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반드시 다 읽고 말리라’는 독한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의 작가도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고, 고양이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고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판형도 작고(4×6판), 두껍지도 않았으며(‘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 295P다.), 내용도 우화 수준이어서 술술 읽혔다. 두어 시간이면 책을 읽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글의 전개는 프롤로그, 첫 번째 미궁 ‘가두는 자’, 두 번째 미궁 ‘자르는 자’, 세 번째 미궁 ‘팔아치우는 자’, 마지막 미궁, 에필로그 순으로 진행되는데, 미궁이 나타나는 과정, 미궁을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우화적으로 압축돼 단순했다. -아마 더 이상 설명할 만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미궁의 의미를 굳이 설명하려는 작가의 에필로그 또한 사족으로 식상하고 평이했다. 아니면 독자들의 수준을 낮게 평가한 친절함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네 가지 미궁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겠다. 미궁을 설명하는 순간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 어쩌면 독자들은 몇 줄 앞에서 말한 차례에서 이미 그것을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의 주제는 뻔하고 단순하다.
이 책에는 작가의 화려한 독서 이력을 보여주는 다수의 작가들과 책 제목들이 나온다. 작가들로는 생텍쥐페리, 괴테, 가브리엘 마르케스, 프루스트, 로맹 롤랑, 니체, 뒤마, 세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등이 나오고, 작품으로는 어린왕자, 백년동안의 고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분노의 포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걸리버 여행기, 달려라 메로스 등등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책들은 내 독서 경험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특히 많이 읽는 책들이고, 한국의 독자들은 몇몇 책들을 제외하곤 내용들이 지루하고 어려워 잘 읽지 않는 책들이다. 예전부터 어려운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일본 문학 작가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나쓰메 소세키, 카와바다 야쓰나리, 다자이 오사무,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등등의 면면을 살펴보라! 그들 또한 이랬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의 작가 이름이다. ‘나쓰카와 소스케’, 옮긴이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나쓰夏’를, 카와바다 야쓰나리에게서 ‘카와川’를, 소는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草枕’란 작품에서 ‘소草’를, 스케介는 일본 문학에서 아쿠타가와상으로 유명한 ‘라쇼몽羅生門’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떤가? 대단한 작가의 오만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마지막 미궁에서 주인공 나쓰키 린타로가 외친 한마디 “어쩌면 책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잊을 뻔했다면 제가 소리 높여 다시 말씀 드릴게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게 바로 책의 힘이에요!”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휴일 오후 창밖으로 길게 해 그림자가 드리우고, 무료하게 보낸 하루에게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면 가볍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나 또한 그랬다.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어린왕자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320만부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