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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Nov 13. 2020

코로나19, 우리가 마주해야 할 미래

14세기 페스트  -  21세기 코로나 그리고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

14세기 창궐한 전염병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페스트는 당시 인류에게 처음 맞이하는 종류의 불행이었고 원인을 알 수 없었으며 너무도 강력했다. 감염원(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을 몰랐던 사람들은 애꿎은 개와 고양이를 살생했고 도리어 천적이 없어진 쥐는 페스트균을 몸에 지닌 채 도시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질병을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고 인식한 종교인들은 함께 모여 속죄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서로에게 전염의 매개가 되어 친구, 가족, 결국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해냈다. 전염병은 서로를 등져야만 살아남는 속수무책의 재앙이었다.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일들이 날마다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만 명의 세계인들이 죽어간다. 이미 에볼라, 메르스 등 언론에서 심각하다고 우려했던 전염병들을 수차례 지나 보낸 뒤였다. 그때마다 희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이토록 일상적인 두려움으로 자리잡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일정 기간 이후 소강국면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전염병을 상대해낸 현대 의학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어떤 전염병이든 문제없으리라는 막연한 믿음마저 갖게 되었다.


작년 말 중국 우한 지역에서 코로나 19의 존재가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전염병은 이제 페스트 이후 가장 위협적인 전염병으로 기록될 것이다. 연구진들은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뿐 확실한 감염 경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박쥐를 식용으로 먹다가 발병한 것이라는 가설부터 중국에서 생화학무기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소문까지, 병증에 대한 공포와 함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치료법을 개발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터,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일부 국가는 도시를 봉쇄했다. 국가 간의 이동을 제한하고 국민들의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과 움직임만을 허가하고 감시했다. 일상 속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필요한 외출과 만남을 자제해야 했다. 처음 1주일, 다음 1개월, 전염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1년 가까이 격리 기간이 장기화되었다. 사람들은 정서적 육체적으로 고립되어갔다.



지구 반대 편에서는 시위가 일어났다. 방역으로 인해 빼앗긴 자유에 대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물론 그 순간에도 지구는 확진자들의 신음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유사과학에 기반한 미신이나 종교적 믿음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국가의 권고에도 숨어서 집회를 이어갔으며 서로가 매개가 되어 페스트의 역사를 재현했다. 개인의 자유가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할 수 있을지, 종교적 신념이 질병의 전염과 관련이 있는지 와는 무관하게 시위와 집회는 이어졌다. 전염병은 누구에게나 공평함에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행에 대해 때로 우리는 이렇게 무감각하다.


페스트는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점차 잦아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어제까지 듣지 않았던 약이 효과를 내고, 죽어가던 사람들이 병을 이겨냈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어느 틈에 사라졌고 우리는 자유의 시간을 되찾았다.


코로나는 언제 우리 곁을 떠날까? 날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 사례를 접하면서 공포감이 커지는 한편 되려 덤덤해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내 일이 아닐 거라는 막연한 바람, 혹은 전염병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생계유지의 문제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의 방역수칙을 지키며 위험할지도 모르는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혹자는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며 최소한의 외부 활동과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지금의 패턴이 완전히 자리 잡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미래가 어떨지는 그때 가서 알겠지만 페스트로 목숨을 잃어가던 당시 사람들이 지금의 자유로운 모습을 상상했을지 모르겠다.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겨낼 것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두려움도 점차 기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 이후, 더 먼 미래에는 제2, 제3의 코로나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만약 전염병이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라면, 우리가 더 외면할 여유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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