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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elike Dec 29. 2020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Tell Me Who I Am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필요하다. 삶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백지에 처음 스케치를 하는 사람이 어린 시절 양육자다. 스케치북은 각자 가진 것이 다를 터이지만 인성이나 성격이라는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하는 사람은 양육자일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부모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에게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이야기다.


알렉스는 18살에 오토바이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는다. 그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쌍둥이 형제인 마커스뿐이다. 알렉스는 마커스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그것을 토대로 삶 전체를 다시 그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을 런던 외곽에 사는 평범한 명문가 가정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32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을 정리하면서 알렉스는 마커스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된다. 알렉스는 이제까지 마커스가 꾸며낸 세상을 바탕으로 산 것을 알게 되었다.    

  

마커스는 거짓 기억을 가지게 했을 뿐 아니라,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도 알렉스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18살부터 32살까지 거짓 기억을 만들어준 마크스. 게다가 과거의 상처 때문에 54살까지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마크스. 마커스는 과거 자신이 받았던 상처는 다시 직면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이기에 그것을 알렉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가 한 행동은 그에 대한 배려였다고 이야기한다. “배려라니?”      


알렉스의 32살부터 54살까지를 생각한다. 자신이 전적으로 믿었던 쌍둥이 형제가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도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알고 싶은 마음과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는 것을 견디며 살아가는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록 가정을 꾸미고 사업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마커스의 거짓말이 그가 말하는 대로 알렉스에 대한 배려고 선의였다고 하더라도,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자신이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 낳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커스는 알렉스를 좀 더 믿었어야 했다. 18살의 알렉스를 못 믿었더라면, 32살의 알렉스는 믿고 이야기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그가 부모에 대한 엄청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살아가는 것처럼 알렉스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그의 다른 말에도 의심이 갈 것이다. 진실을 말했다면 54살까지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단절된 시간이 단축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상처에만 주목하여 진실을 알고 싶은 알렉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건 아닌지, 자신의 상처에만 주목하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마커스는 54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아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마침내 마커스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진실은 끔찍하다. 어머니는 자신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소아성애자였을 뿐 아니라 다른 소아성애자들에게 자신의 쌍둥이 아들들을 돌리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마커스는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다고, 자의로 기억을 지우려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왜 빨리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려는 마음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감추려고 하면 더 커지는 법이다. 지나간 일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은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 상처를 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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