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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04. 2021

일본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

나츠메 우인장을 보고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만화가 있다. 한창 일본 만화 많이 보던 고등학생 시절, 나보다 더 많이 보던 친구에게 추천받고 기억해두었던 작품인데,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뀐 요즘 넷플릭스에 애니로 나왔길래 틈틈이 보고 있다.


나츠메는 주인공 이름이고, 우인장은 친구들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다. 여기지만 들으면 나츠메와 친구들의 우정 이야기인가 싶지만 사실 두루마리에 이름이 적힌 '친구들' 요괴다. 일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인 요괴를 나츠메는   있고,  우인장의 주인인 나츠메의 할머니 또한 그러하다. 나츠메 우인장은 손자인 나츠메 타카시가  두루마리를 갖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룬다.


잔잔하고 따뜻한 일본적인 이야기다. 폐 끼치는 걸 너무나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서 도움을 요청하고, 요청받은 사람은 사력을 다해 도와주고 구해준다. 원피스를 비롯한 일본 만화에서 자주 보이는 전개다. 야사시優しい라는 단어가 계속 나온다. 한국어로는 '상냥하다' 혹은 '다정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일본 애니를 보는 사람들 귀에 자주 들릴 수밖에 없는 단어.


사실 2021년의 내가 보기에는 좀 밋밋한 스토리다. 미드의 쫀득쫀득한 클리프행어에 익숙해져서일까. 고등학생 때 봤으면 더 재밌게 봤을지 모르겠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좋기도 하면서 몰입이 안 되기도 한다. 끝까지 보게 될지 모르겠는데, 오늘 한 편을 보다가 문득 예전에 왜 일본에서 살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일본문화를 좋아했다. 순전히 만화나 영화의 영향일 것이다. 작품 속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정성스레 밥을 만들고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식사하는 장면도 좋았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일본에 몇 차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에 살아야 하는구나.


무엇이 그렇게 좋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어느 하나가 특별히 좋았다기 보단, 거슬리는 게 적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도쿄 같은 대도시는 다를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녔던 도시는 차들이 경적을 잘 울리지 않았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이미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아직 못 건넌 사람들을 위해 버스는 조용히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렸다. 소음에 예민해서 쉽게 피곤해지는 나는 이런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어느 날 저녁 대형 쇼핑몰 근처를 거닐다가 바닥에서 쓰레기를 발견했는데, 그게 그날 처음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였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수십 대의 택시가 주차장에 잘 정렬된 채로 주차되어 있었다. 또 언제는 거리를 걷다가 길을 잃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중년 여성분이 다가와 도와주기도 했다. 그분뿐만 아니라 길을 물으면 다들 참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문득 서울에서 길을 물으려는데 말을 걸자마자 고개를 휙 돌리고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불친절한 사람이라 그랬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혹은 그래도 된다고 느끼는 현실이 서글펐다.


음식은 비싸게 느껴졌는데 그만큼 맛있었다. 그래도 돈 받은 만큼은 해주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다. 중국에서 살 때는 값을 깎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었기에 늘 가격 흥정을 했는데 그게 참 피곤했다. 다들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적응을 못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바가지 씌우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가격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면 사는 데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았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욕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고급 초밥집에서 모두가 같은 접시로 먹고 있는데, 한국인인 자신만 다른 접시에 먹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일본어를 못하고 눈치가 없어서 못 알아차렸나 싶기도 했지만, 특별히 불쾌한 일을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언젠가 일본에 살게 될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내가 한 일련의 선택들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나츠메 우인장을 보면서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 당시에는 친절함과 다정함을 중요시하고, 디테일에 대한 집착으로 구현되는 높은 완성도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었다. 한 나라에서의 삶을 매우 단편적인 기준으로 바라본 것이었고, 그래서 결국 실현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일본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 마음이 애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족되긴 하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일본에 가고 싶다.


한창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일 때 한국에 태어나서 좋은 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본 여행을 값싸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요새 워낙 시국도 시국이고, 한일 관계도 좋지 않아서 예민한 상황이지만, 알게 뭐냐. 나는 일본에 가고 싶다. 그것도 매우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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