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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18. 2021

식후에 백보를 걸으면 99세까지 산다

飯後百步走,活到九十九

중국어를 좋아한다. 내가 할 줄 아는 다른 언어인 영어, 한국어와 비교했을 때, 중국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언어적 쾌감이란 게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말을 할 때 글자 수를 딱딱 맞춰서 얘기한다든지 하는 것인데, 앞 문장이 다섯 글자이면, 뒷 문장도 다섯 글자로 말하는 식이다.


몇 년 전에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많은 문장을 듣고 읽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 중국어 문장이 하나 있다. 바로, 飯後百步走,活到九十九. 식후에 백보를 걸으면 99세까지 산다는 뜻인데, 중국어 선생님이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난 후 수업을 시작하면서 해줬던 말이다. 이상하게 이 말이 뇌리에 깊이 새겨졌는데, 그 내용에 공감했던 것도 있지만 아마 '다섯 글자+다섯 글자=열 글자'라는 완결성을 가진 문장 구조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 문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숫자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백보'를 걷는다고 '99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 이 문장을 지은 사람도 운율을 고려하여 숫자를 정했을 것이고, 그것이 합당한 숫자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이 열 글자는 꽤 괜찮은 건강 조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백보만 걷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장점이 있기도 하다. 목표를 작게 세워서 실행을 쉽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 의도된 것일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이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니 새벽 2시였다. 밥 먹고 바로 잤더니 속이 더부룩해서 몸이 나를 깨운 게 아닌가 싶었고, '역시 밥 먹고 좀 걸었어야 했나'하고 생각했다.


요즘 날씨가 추워서 일단 집에 들어오면 밖에 나가기가 영 쉽지가 않은데, 내일부터는 밥 먹은 후에 좀 걸어야겠다. 배운 것을 실행할 줄 아는 것을 중국어로 學以致用이라고 한다. 비싼 돈 주고 중국 어학연수했으니, 중국에서 배운 열 글자를 활용해서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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