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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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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Sep 01. 2020

시칠리아 : Prologue

세 발의 메두사, 그대도 나를 기다렸나.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극장에서

    나는 왜 시칠리아로 떠나게 되었을까.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을 짐작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여행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기간은 대략 2주쯤. 극동의 친구들을 불러 독일에서 만나, 학센을 먹고 삐루를 삼키고, 코끼리 대신 기차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어 마치 한니발처럼 밀라노에 입성하는 것. 그것이 이탈리아 여행의 첫 계획이었다.


    계획을 세우던 나는 불현듯 친구들에게 시칠리아도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 그들에게 나도 잘 모르지만, 위치로 보면 이탈리아의 제주도쯤 되는 곳이라고 대충 던지듯 말했다. 친구들은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가보자고 말했다. 가보면 알겠지. 그게 그들이 시칠리아행을 동의한 이유였다.


    나는 시칠리아를 갈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먼 시간과 둔탁한 길을 돌아서라도 언젠가 그곳에 도착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4년이 지난 오늘, 시칠리아에서의 날들을 떠올려보면 그 이유는 더욱 선명해진다. 나는 그곳의 음식도, 와인도, 풍경도, 그 어떤 유적지도 아닌 시칠리아 그 자체를 (그때는) 원했고, (지금은) 그리워하고 있다.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팔레르모에서 보 짧았던 5일간의 시간을 헤고 만지며 막연한 그리움을 선명한 순간으로 적어 내린다. 다시 하늘이 열리고 서해와 지중해가 서로 이어지는 날, 나는 한 번 더 시칠리아로 떠날 것이다. 아니,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훗날의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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