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칠리아로 떠나게 되었을까.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이유을 짐작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여행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기간은 대략 2주쯤. 극동의 친구들을 불러 독일에서 만나, 학센을 먹고 삐루를 삼키고, 코끼리 대신 기차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어 마치 한니발처럼 밀라노에 입성하는 것. 그것이 이탈리아 여행의 첫 계획이었다.
계획을 세우던 나는 불현듯 친구들에게 시칠리아도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 그들에게 나도 잘 모르지만, 위치로 보면 이탈리아의 제주도쯤 되는곳이라고 대충 던지듯 말했다. 친구들은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가보자고 말했다. 가보면 알겠지. 그게 그들이 시칠리아행을 동의한 이유였다.
나는 시칠리아를 갈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먼 시간과 둔탁한 길을 돌아서라도 언젠가 그곳에 도착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4년이 지난 오늘, 시칠리아에서의 날들을 떠올려보면 그 이유는 더욱 선명해진다. 나는 그곳의 음식도, 와인도, 풍경도, 그 어떤 유적지도 아닌 시칠리아 그 자체를 (그때는) 원했고, (지금은) 그리워하고 있다.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팔레르모에서 보낸 짧았던 5일간의 시간을 헤집고 만지며 막연한 그리움을 선명한 순간으로 적어 내린다. 다시 하늘이 열리고 서해와 지중해가 서로 이어지는 날, 나는 한 번 더 시칠리아로 떠날 것이다. 아니,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훗날의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