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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Feb 14. 2022

연락連絡: 서로 이어져 맞닿다.

가는 말만 있고 오는 말은 없는 세상에서

    간만에 오랜 친구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작년 가을이니 석 달쯤 지난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서로 안부를 묻다 보니 일 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만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지?" 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녀의 말이 맞다.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보자고 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먼저 만나자고 상대방에게 연락하는 쪽이다. 오늘처럼 상대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고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연락을 받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런 경우 90% 정도는 모임에 가지 않는다.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하지 않은 모임이라면 십중팔구 만나봤자 재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으로 직조해나간 나의 만남 방식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간결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소식이 희미한 친구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곤 했다. 특히 세밑에 다다르면 한 해 동안 연락을 한 번도 못 한 친구가 누구였는지, 그중 소식이 궁금한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 안부 인사를 돌렸다. 그런 행동을 상대방과 나를 이어주는 최소한의 끈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인연을 이어간 3~4년 동안 나에게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그들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섭섭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바쁘겠거니, 그리고 나도 이제 점점 바빠지니 예전처럼 모든 사람을 챙길 수는 없다고 단념했다. 그리고 상대방을 친구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특히 상대방과 내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많은 이들이 그런 식으로 나의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자주 만나거나, 만나지는 못해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는 이들이 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연락을 던지는 이들이다.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먼저 연락을 하는 쪽에 가까웠기에 내가 잠시 연락을 못 한 틈에 상대방이 먼저 안부를 물어오면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한 번은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때였는데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기프티콘을 엄청 많이 보내줬다. 내가 취업 준비 중이라 응원차 많이 보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직장생활을 시작해 한창 정신없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신경 써줘서 고마워. 내가 취업하면 한턱낼게."라고 그에게 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을 주었는데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뭐가 고마워. 예전부터 네가 항상 먼저 연락해주었잖아. 난 그게 늘 고마웠어." 그날,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오랫동안 그 말을 기다렸음을 깨달았다. 나에겐 일상 같았던 연락의 수고를 고맙다고 말해준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내 마음속의 작은 조각을 그가 건드려 준 것이다. 그날 이후 연락에 대해서, 연락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비로소 내 삶에서 어떤 이들을 남겨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만난 그녀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뜻밖의 이야기를 돌려 주었다. "너도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 있어. 한 10년 전쯤에. 먼저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오늘도 먼저 연락한 거야." 나는 그날도, 그 말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던 10년 전 나에게 참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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