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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16. 2023

#1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1)

시작은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빌라 엘리베이터에 방(榜)이 붙었다. 끈적끈적한 푸념을 한 주걱 펴 바른 첫 문단 아래로 본론이 나왔다. "지금 우리 건물을 관리하는 업체를 변경합시다." 못 살겠으니 갈아보자는 201호의 메시지였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빌라는 지은 지 갓 2년이 된 빌라다. 관리업체 A는 건물이 준공된 시점부터 공용공간(엘리베이터, 복도, 계단 등)을 관리했다. A는 각 세대로부터 받은 관리비를 바탕으로 청소업체, 인터넷 업체, 엘리베이터 업체에 매달 필요한 비용을 댔다. 입주자 입장에서는 여러 업체를 통하는 하나의 창구인 셈이다.  


일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관리비 납부에 대해 문의해도 시큰둥한 말투에, 메시지를 보낸 뒤 시간이 꽤 흘러서야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 인터넷을 사용할 경우, 관리비에서 인터넷 비용이 공제된다는 사실도 안내하지 않아 나는 잘 쓰던 개인 인터넷을 해지하고 입주했다. 여러모로 꼼꼼하거나 책임감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업체였다. 


그래도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복도와 계단은 특별히 깔끔하진 않지만 지저분하지 않은 수준에서 관리되었으며, 건물 입구의 분리수거 공간은 매주 주말마다 청소업체에서 정리해 두었다. 인터넷 속도도 준수하여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없애야 할 업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호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201호는 입주한 이래로 줄곧 청소와 관리비 사용내역에 대해 업체와 실랑이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참다못해 더 좋은 업체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던진 첫 번째 제안은 '관리비 내역 공개'였다. 201호는 A에 청소업체 비용이 얼마인지, 그밖에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지출이 있는지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격분한 그는 'A 타도'를 위해 각 세대의 의견을 모으고자 방을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관리비 내역을 공개하자는 이 작은 메시지가 403호의 속을 타게 만들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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