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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17. 2023

#2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2)

201호는 입주자 회의를 연다고 했다. 그런데 방을 붙인 시점과 회의 희망일이 너무 밭았다. 심지어 노동절과 어린이날 연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회의 희망일은 3가지 옵션을 두었으나 희망일이 너무나 희망찬 나머지 서로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주말 저녁에 입주자 회의라니. 온라인 회의라고 적혀있을 뿐 화상회의인지 단순 메신저 채팅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파장의 스산한 기운이 시간을 초월해 느껴졌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불참하나 다른 입주자들의 의견이 모이면 따르겠다'라고 적었다. 역시나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회의 희망일에 회의를 희망한 사람이 201호밖에 없었음이 밝혀졌다. 곧이어 새로운 방이 붙었다. 201호가 나를 비롯한 입주자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게시한 것이다.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현재 관리업체에 불만이 있다. 혹은 특별한 불만은 없으나 입주자 과반이 업체 변경에 동의하면 따르겠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업체 변경의 기치를 내건 201호가 '더 좋은' 업체로 우리를 인도하겠다고 하였으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내심 그가 공동체의 일에 앞장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세대별 의견을 살펴보니 총 16세대 중 총 5세대가 업체에 불만이 있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4세대는 업체 변경에 이견 없으며 입주자들의 합의에 따르겠다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 다른 2세대는 이미 5월 관리비를 납입했는데 환불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걱정했다. 마지막으로 주차장에 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 있다며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를 두고 논쟁할 때, 굳이 들리는 소리로 "나는 볶음밥만 시키는데"라고 주절거리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업체를 변경하고 싶다는 세대는 5세대에 불과했다. 과반이 되지 않는 숫자였으나 201호는 속전속결이었다.


첫째, 입주자들의 뜻에 따라(?) 업체 변경을 진행한다. 

둘째, 만약 기존업체가 업무유지를 원한다면 업무내용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셋째, 현재 업체에 의사를 문의한 상황이며 회신기한은 연휴가 지난 차주 월요일로 한다.


마치 반공을 제1의 국시로 발표하던 그날의 군인들처럼 201호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물론 말투가 저렇게 담대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발표에는 업체 변경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반가움과 묘한 흥분이 묻어 있었다. 201호의 빠른 의사결정으로 업체변경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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