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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19. 2023

#4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4)

카톡방으로 초대되기 전 날, 관리업체에 관리비 환불을 요청했다. 201호로부터 계약종료되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으니 선불한 5월분을 돌려달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역시나 관리업체는 말이 없었다. 다음날에 다시 연락하자 답변이 왔다.


"계약종료는 5월 10일 기준입니다. 또 201호의 일방적인 요청 하에 계약이 종료되므로 시설관리사항과 미납금 정산 이후에 결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깔끔하게 문장을 정리했지만 관리업체의 메시지는 중언부언에 오타도 많았다. 의미도 모호해 미납금 정산에 대해 따로 물어봐야 했다. 나의 관리비는 선납하여 환불이 필요한 상황인데 미납금이라니,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리업체는 다시 설명해 주었는데 전체 세대 중 아직 5월 분(5월 1일 ~ 5월 10일) 관리비를 내지 않은 곳이 많아 현 상황에서 계약 종료를 하기 어려우며, 모든 세대의 정산이 끝나야 마무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업체가 보내준 표에는 환급대상자에 내가 명시되어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보내고 업체와의 연락은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카톡방에서 201호가 침묵을 깼다. 나처럼 관리비를 선납한 다른 세대에서 업체에 문의하였으나 201호로부터 선납금을 돌려받으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201호는 관리비 환불은 자신과 무관하며 업체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업체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 201호가 현재 미납한 관리비가 많다. 201호는 미납 관리비를 추가로 납부하지 않을 것이므로 관리업체가 미납금을 포기하는 대신 선납한 세대는 201호로부터 환불을 받길 바란다. (즉, 201호 및 기타 세대의 미납금과 타 세대의 선납금을 상계처리할 계획)


201호는 연신 억울함을 성토했다. 그리고는 구청 법률상담센터에도 문의하였으나 관리업체가 직접 각 세대에 환불하는 것이 옳다고 답변을 받았으며 개인적으로도 추가 법률상담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 세대는 관리업체에 연락하여 환불받으라는 동일한 이야기를 다시 공지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구청 법률상담센터에서 받은 답변을 공유하지도, 추가 법률상담의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4월분까지의 관리비를 선납했고 송금확인증도 확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으나 그 증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의아했다. 


만약 내가 201호의 상황이었다면 억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증빙을 공개했을 것이다. 관리비 선납 확인, 법률상담 내역을 공개하고 '업체에서 몽니를 부리는 것일 뿐, 관리비 미납의 사실이 없으므로 각 세대는 업체로부터 환불받아야 한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201호는 연신 억울하고 황당하다고만 이야기할 뿐, 구체적인 증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심지어 업체가 주장한 5월 1일부터 5월 10일분까지의 관리비는 납부할 계획인지, 무시할 계획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항상 대답해야 할 사항에서 한 두 가지를 빠트리는 것 같았다.)


카톡방은 조용했다. 누가 몇 호인지도 공지되지 않고 모두가 각자의 이름으로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나와 같은 날 초대된 다른 이도 있었지만 201호도, 다른 그 누구도 현재까지 진행된 논의에 대해 공유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201호의 해명 같은 설명마저 모호한 미완의 것이었다. 


정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하루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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