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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21. 2023

#6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6)

201호는 같은 날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청소를 담당하던 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고자 하였으나 업체가 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기존 관리업체와 친밀한 관계이겠거니 나는 짐작했다. 201호는 만약 건물이 지저분해져 청소가 필요하다면 본인이 아는 지인의 업체에 의뢰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청소 예정일과 금액을 알려주었지만 청소업체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모든 일이 즉흥적으로 허겁지겁 진행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청소업체는 청소 후 문제가 없으면 추후 계약을 하겠다고도 말했다. 의아했다. 한 입주자의 명의로 건물 전체의 청소를 계약해도 문제는 없는 걸까.


우선 청소보다 더 시급한 관리비 환불 문제를 다시 물어봤지만 201호는 기존 대답을 되풀이했다. 자신은 타 세대 관리비 환불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리업체의 책임전가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별다른 말은 덧붙이지는 않았다. 실제 법률 상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호는 관리업체와의 문자내역을 보관 중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카톡방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4시간 뒤, 201호는 엘리베이터 관리 업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비상 통신비 명의 변경을 포함한 계약서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비상 통신비가 무엇인지, 또 엘리베이터 관리회사와의 계약은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지 알 수 없었다. 201호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공고문에 붙였던 것과 같이 '새로운 입주자 대표'를 뽑고 싶다는 말을 끝에 덧붙였다. 허탈했다. 이곳에는 아무런 내막을 모르는 갓 이사 온 세대부터 아직 학생인 어린 입주자들도 있을 터다. 그런 상황에서 201호의 주장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이 힘들다는 감정적 넋두리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감정적 허무함과 별개로 청소업체의 계약연장 거부, 엘리베이터 관리 업체와의 신규 계약 등 법적 절차가 산재한 상황에서 카톡방을 통해 공지되는 내용은 역설적으로 너무 부실하다고 느껴졌다.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1호는 도대체 관리업체에게 어떻게 계약종료를 통보했을까. 그리고 관리업체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타 세대의 관리비 환불을 201호에게 전가했을까. 왜 그 둘은 서로의 대화내역을 공개하지 않을까. 의문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쌓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의문에 직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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