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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24. 2023

#9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9

201호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점잖은 말투였지만 행간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1) 계약 종료의 시점에 대한 201호의 답변

X년 전 5월 Y일부터 관리업체가 관리를 시작하였다. 이는 관리업체게 보낸 안내문자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금년 5월 Y-1일까지로 근무기간을 정하면 계약기간이 정확히 만 X년으로 끝나게 된다. 


2) 계약 종료의 주체에 대한 201호의 답변

관리업체와 논쟁이 있었을 때, 업체에서는 불만이 지속되는 관리업체를 교체하라고 직접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본 건물에 입주할 때 계약을 진행한 부동산 중개업자도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하였다. 또 직접 찾아본 집합건물관리 법령에도 입주자들의 동의가 있으면 관리업체를 변경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3) 계약 종료의 완결성에 대한 201호의 답변

관리업체에서 미납금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납세대와 미납금의 내용이 자꾸 바뀌고 있다. 처음 계약 종료를 언급했을 때는 5월 1주일 분의 관리비를, 최근에는 10일 치 분의 관리비를 요구하고 있다. 정산 기준도 제대로 말하지 않아 굳이 납부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엘리베이터 회사와 관리회사 간의 정산은 4월 말일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5월 관리비를 납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4) 원활한 관리 이양을 위한 기간 설정에 대한 201호의 답변

기존 관리업체는 건물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았으니 인수인계를 요청해도 제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호는 막힘없이 답변을 작성했지만 답변을 본 나는 의문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3가지를 물어봤으나 한 두 가지만 답변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마저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그저 개인적 견해에 불과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추가로 발생한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 만 X년을 계약기간으로 설정하는 것은 201호의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또 업체와 협의된 내용이 아니라 201호가 업체에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이니 추후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 심지어 업체가 답변을 하지 않았던 5월 첫 주말은 연휴였다. 연휴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고 일방적로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계약의 주체가 임대인이 아닌 입주자라고 못 박은 법령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세입자로서 임대인에게 동의는 구해야 할 것 같았는데 201호는 임대인 동의조차 불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이건 본인이 직접 해석한 '주장'에 가까웠다. 심지어 본인의 주장을 '부동산 중개업자'가 확인해 주었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과연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법적 책임을 질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 대목에선 201호에게 중요한 건 실제 법과 그 해석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 인수인계를 진행하지 않고 지금 당장 신규 업체를 섭외할 경우, 건물에 대한 점검은 누가 진행할 것인지 201호는 이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기존 업체는 인수인계를 부탁을 해도 불성실할 것이라는 자신의 상상만 다시 내어놓았다. 만약 업체를 바꾸었는데 뒤늦게 수리가 필요한 사항이 발견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관리를 등한시한 기존 업체? 아무것도 모른 채 덜컥 섭외된 신규 업체? 업체 변경을 무리하게 주도한 201호? 그것을 방관한 나머지 입주자들? 


어쩌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건물 점검 여부를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201호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저 기존 업체를 비난하는 것을 반복했다. 201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건물 관리와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오후가 되었지만 201호의 구체적인 의견과 더불어 나머지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수 없었다. 모두들 내가 제시한 의문에 상관이 없다는 태도인지, 혹은 누군가가 나서서 알아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더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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