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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23. 2023

#8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8)

시국선언문처럼 보일듯한 긴 카톡을 남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웬걸, 건물 1층 현관에 보니 언제 다녀갔는데 관리업체의 관리비 청구서가 붙어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것이었다. 한밤 중에 다녀간 것인지 새벽부터 이곳을 들린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손에 베일 것처럼 빳빳한 종이날이 출력된 지 오래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시체의 경직도를 보고 사망 추정시각을 맞추던 코난이 된 기분이었다.


관리업체는 분명 나와 다른 입주자들에게 5월 10일 자로 관리가 종료되며 그에 따라 월 관리비의 1/3을 징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새로 붙은 고지서에는 1개월치 관리비 100%가 부과되어 있었다. 도대체 언제 적 기준으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작성은 오래전에 했으나 부착만 몇 시간 전에 한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왜 부과 기준이 최근 말한 것과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업체임은 분명했다.


내가 여러 가지 의혹(?)과 우려사항을 공유한 뒤 3시간이 지나고 한 명이 내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세입자로서 임대인의 동의 없이 관리업체를 바꾼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그 점이 고마웠다고 말했고 나는 누군가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2시간이 더 흘렀고 메시지 옆에 붙은 숫자는 새해 카운트 다운처럼 줄어들어갔지만 다른 사람들의 답변은 없었다. 모두가 눈치만 보며 그저 편하게 일처리를 하고 싶은 걸까. 대학시절 경험한 조모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 201호가 답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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