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 12
201호가 403호를 단톡방에 초대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403호를 비롯하여 입주자들은 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더 이상 의견을 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201호는 사람들을 단톡방에 초대만 할 뿐 그전에 논의된 사항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의견도 거의 내지 않았다. 그녀가 냈던 유일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대표가 되어 논의를 정리하고 계약을 체결했으면 합니다." 유체이탈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201호는 (그녀 스스로는 '임시직'이라고 강조했지만) 우리 건물의 입주자 대표였다. 이 때문에 단톡방에 참여하지 않은 입주자 몇 명이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질의를 한 것 같았다. 403호가 입장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그녀는 개인적으로 받은 질의에 대한 대답을 공유했다.
첫 번째, 법률구조공단에 본 건과 관련하여 상담을 신청한 상태이나 2주일가량 기다려야 하는 일정이다. 따라서 그동안 입주자들의 논의를 정리하여 결론이 나면 좋겠다.
두 번째, 기존 관리업체가 관리에 손을 놓은 지 어느덧 일주일이 넘어 1층 분리수거장이 엉망이 되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청소업체를 불러 정리하겠다. 물론 이 비용은 추후 지급할 새로운(?) 관리비에서 공제할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었다. 우선 첫 번째 사항은 내가 이미 수차례 문의한 사항이었다. 업체와의 계약종료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관리비 환불이든, 신규 업체 섭외는 진행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기존업체와 관리계약이 잘 끝났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그러나 201호는 자신은 법률상담을 할 테니 나머지 일은 모두 다른 입주자들이 결정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 법률상담 역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기존 업체가 부과한 미납금을 내지 않기 위해)와 관련된 상담이었다.
두 번째, 기존 업체가 갑자기 관리에 손을 뗀 것, 그리고 신규 업체가 섭외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201호의 잘못이었다. 201호는 기존 업체에게 당장 관리를 그만둘 것을 고지했다. 그 때문에 이미 당시 축적된 쓰레기와 분리수거함을 치우지도 않은 상태로 기존 업체는 그야말로 증발해 버렸다. 내가 기존에 말했던 관리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비용을 들여 치운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그마저 나중에 낼 관리비에서 공제해 달라는 말을 덧붙여 진의를 의심케 했다.
새로운 업체는 누가, 언제 섭외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업체와 관리비를 공제하는 것은 누구와 의논하고 결정하는가? 모든 것이 미궁인 상황에서 201호를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시종일관 자신의 푸념 같은 주장만 되풀이했다. 어느덧 5월의 절반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