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가 긴 답장을 남겼다. 이미 구청에 질의한 결과, 관리업체가 각 세대에 환불을 진행해야 하며 본인은 관리업체가 주장하는 미납금이 없다고 했다. 설사 미납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타 세대 관리비와 상계처리할 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법률상담 역시 새로운 내용을 듣고자 함이 아닌 '재확인' 목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본인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법적 효력이 있는지, 구청의 답변은 서면으로 받았는지 유선으로 받았는지 등의 자세한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201호는 끝으로, 제안한 시점까지 업체의 답변이 없었으므로 계약은 해당 시점에 종료된 것이 마땅하고 이후 관리업체가 요구한 관리비는 부당해 보인다고 했다.
201호의 '최후통첩'이 도대체 얼마나 막강한 것이기에 답변이 없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것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아마 단톡방에 들어온 모든 이들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방식의 통보는 오히려 관리업체의 몽니에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호의 모든 말은 찬장에서 갑자기 냄비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뜬금없고 맥락이 없었다. 201호는 다음 문장으로 문단을 마무리했다.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각자 무료 상담을 신청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와중에 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201호는 다음 문단에서 찬장을 너머 천장까지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기존 업체를 유지해도 이견이 없다고 밝힌 나에게 계약서를 작성하겠냐고 다시 물은 것이다. 계약서 작성은 업체와 이야기하라고 벌써 3번은 말한 듯했다. 혹 내가 업체와 상호 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뜻이라면 이 역시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수차례 말했다. 그러나 201호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문장으로 지붕까지 박살내고야 말았다. "다른 분이 나서든, 과반이 동의하든, 기존 업체와 연장하든, 신규 업체를 섭외하든 제가 나설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무간지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201호는 엉망진창이 된 1층 분리수거 구역 청소를 위해 업체를 부르겠다고 했다. 본인이 먼저 비용을 지불하겠으며 이는 훗날(?) 내게 될 관리비에서 공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부를 청소업체는 어디인지, 비용을 어떻게 증빙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청소업체를 부르는 것에 이견이 있으면 2시간 내로 답변하라는 말뿐이었다. 2시간 이내에 답변한 입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말 오전에 벌어진 일이니 물리적 시간상 확인을 미처 하지 못한 세대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날, 201호는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고 청소업체를 불러버렸다. 일은 점점 꼬여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