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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01. 2023

#16 403호는 속이 타고 201호는 말이 없다 16

내가 입을 다물자 (카톡인데 '입'을 다문다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다른 이들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1호가 올린 관리비 납입 내역이 문제였다. 201호는 송금 내역을 은행 앱이나 통장 사본이 아닌 엑셀 표로 정리해 올렸다. 당연히 아무런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자료였다. 


입주자 두 명이 201호에게 납입 내역을 증명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업로드해 달라고 했다. 그중 한 명(206호)은 관리업체 변경과 관련된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고 다른 이들의 의견도 묻기 시작했다. 대략 8~9일 전쯤 내가 처음 단톡방에 입장한 직후, 내가 했던 일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웃기면서도 슬펐다. 


비교적 최근에 단톡방에 입장한 302호도 입장을 밝혔다. 앞서 구체적 의견을 밝힌 206호의 의견에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관리 업체 변경과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카톡을 살펴보니 그녀는 5월 관리비를 선납하지 않았다. 관리 업체가 변경되든 변경되지 않든 그녀가 떼일 돈은 없었다. 아직은 본인에게 피해가 없으니 대답하기 편한 내용만 골라 답하는 것 같았다. 


편한 내용만 '골라' 답변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상당한 부정적 관점이 투여된 표현이다. 여기에는 사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302호는 201호가 관리업체 변경의 기치를 내걸었을 때 찬성한 3명의 입주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다채로운 문제가 불거지자 정작 업체 변경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고 그저 사태를 관방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실제로 특별한 사연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녀가 단톡방에 늦게 참여하여 의견을 내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발을 빼고 관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206호의 의견 중 몇 개를 골라 동의를 표한다고 말한 것도 206호가 의견을 던진 뒤 2시간이 지난 일요일 자정 무렵이었고 그것이 그녀가 단톡방에 들어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처음 던진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단톡방이 처음 생긴 직후에는 참여자가 적어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각자의 상황(관리비 납부여부, 이사 등)이 모두 달라서 논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또 한 주가 부질없이 바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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