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곳을 가게 된 계기는 한 방문객이 쓴 짧은 관람평이었다. 내일 아침에 가보고 생각보다 별로면 빨리 나오면 되겠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잠자리에 누웠다. 영월종교미술박물관, 미술관도 아니고 박물관도 아닌 아리송한 이름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다. 행선지를 정했다는 안도감과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 뒤섞인 감정을 이불처럼 덮고 잠이 들었다.
영월종교미술박물관은 영월 시내에서 약 6km 떨어진 북면 시루산길에 있다. 남북으로 펼쳐진 산속에 쏙 안겨 있는 모습이다. 때는 한여름이라 우거진 산세에 감동받을 만도 하지만 좁은 농로를 지나다 보니 주변 풍경을 살필 세가 없다. 넓은 배수로에 행여 바퀴가 빠지진 않을까 신경이 곤두선다. 정말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기나 한 것일까. 리뷰도 많지 않던데 혹시 오래전 없어진 곳은 아닐까.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이 가지를 친다.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표지석이 장승처럼 서 있다. 철문은 잠겨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오픈시간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코로나로 인한 임시휴무가 여기저기서 빈발하던 때라 따로 문의를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으로 다음 행선지를 찾고 차를 돌려 나가려는 순간 사이드 미러로 보니 철문은 다시 열려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선은 밑져야 본전이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박물관 본관을 지나 오르막 중턱에 차를 세웠다. 주차를 하고 본관으로 내려가니 한 어르신이 마중을 나온다. 아 왜 차를 거기 세워, 편하게 아래에 주차하지. 아래에 주차할 공간이 있나요? 내 차 옆에 대면되잖아. 급하게 들어온다고 못 봤어요. 됐어 그럼, 들어와서 커피나 한잔해요. 어르신은 조각가인 최바오로 작가였다.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불을 켜고, 커피 머신을 돌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커피 있어요? 주시는 대로 먹겠습니다. 좋아 그럼, 내가 기가 막힌 커피를 하나 타주지. 커피를 타며 작가는 자신의 커피론(論)을 들려주었다.
이게 커피가 말이야, 사람들이 어디 남미산 커피가 좋다고 하는데 그건 다 낭설이야.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커피란 커피를 다 마셔봤거든, 남미산 커피는 대부분 유럽 애들이 식민지배할 때 태동한 것이라서 어찌 보면 짝퉁이지. 진짜 맛있는 커피는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이런 나라들의 커피가 괜찮아. 지금 내린 것도 동남아에서 가져온 커피야. 어때 맛이 좋지? 대답은 기가 막힌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한입에 털어 넣을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남아도 식민지배 때 커피 재배가 시작된 것 아닌가? 그러나 얻어먹는 입장은 늘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몇 살이에요? 맞은편에서 커피 대신 보이차를 마시며 작가가 물었다. 올해 서른하나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감탄이 떨어진다. 캬, 좋다. 정말 좋은 나이다. 종종 어르신들로부터 “한창 좋을 때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어릴 땐 그 말이 참 싫었다.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쉽게 던지는 수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말이 종종 위로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지금 힘든 것도 다 아름답게 끝날 것이라는 응원처럼 들리기도 한다. 문득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커피를 내어주듯 추억을 풀어놓는다.
나는 그 나이 때 참 힘들었어. 프랑스에서 유학했거든. 회화를 그리는 친구들은 초상화라도 팔아서 용돈을 벌었지만 조각을 하는 나는 그럴 수도 없었어. 서른 살 전후로는 배불리 한 끼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어. 늘 굶고 다녔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짧게 탄식을 내뱉고는 아련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탄식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작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난 33살에 파리대학 미대 교수가 되었지, 하하하.
불현듯 박물관 입구에 세워져 있던 독일제 세단이 떠올랐다. 이번 관람은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과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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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6/9)는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