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작품을 보러 가봅시다. 슬슬 경비 시스템이 꺼질 시간이야. 작가는 시계를 가리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관람 시간이 원래 11시부터인가요? 인터넷에서 보고 9시로 알았습니다. 아니야, 9시가 맞아. 오늘은 내가 늦잠을 잤어. 그래서 경비 시스템 꺼질 때까지 커피 마시면서 기다린 거야. 솔직함이 시종일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작품관람에 앞서 한 가지 설명을 해줄게요. 조각을 보려면 이건 꼭 알고 봐야 해. 작가는 벽에 걸린 목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이 가로 50cm, 세로 50cm짜리 목각을 보면 우습게 알아. 크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야. 이 정도 사이즈의 목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훨씬 큰 원목이 필요해. 그럼 원목은 뚝딱 구해지느냐? 절대 그렇지 않아. 나무를 구해도 안쪽에 갈라지거나 썩은 부분이 있으면 사용하지를 못해. 다 잘라 버려야 하거든. 결국 저만한 목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인 남자 3명이 껴안아도 다 품을 수 없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필요해. 그 나무를 잘라 속을 확인하고, 거기서도 조각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고, 그것이 조각가를 만날 때 비로소 하나의 목각이 탄생하는 거야. 바둑판만 한 목각 너머로 거대한 나무가, 빽빽한 숲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아차차 이건 설명을 안 했네, 이건 내가 엊그제 밤새워서 만든 피에타야. 작가는 테이블에 놓인 금속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여름 밤 꼴딱 새우며 겨우 이거 하나 만들었네. 피에타상은 한 손에 들 수 있을 법한 사이즈였다. 불투명한 회색빛 때문에 약간은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 번 들어봐. 생각보다 무겁지? 크기에 비해 조각은 꽤 무거웠다. 속이 꽉 차 있어 그런 것일까. 아니면 금속 자체가 밀도가 높은 것일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조각을 바라보고, 만져보고, 그 원료를 추측해보고 있었다. 자 이제 슬슬 입장권을 뽑읍시다. 나는 카드를 건넸고 그가 입장권을 뽑았다. 사실 돈은 안 받아도 되는데, 이게 경비 시스템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문 열려면 티켓을 끊어야만 해. 그날 유일하게 그가 겸연쩍어했던 순간이었다.
에라이 이게 여기 있네. 작가는 카드 리더기 옆 작은 편지 봉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혹시 김대건 신부 알아요? 작가가 집어 든 편지 봉투에는 우정사업본부에서 보낸 기념우표가 들어 있었다. 올해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으로 우정사업본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배경에 작가의 조각이 삽화로 들어가 보내준 것이라고 한다. 나 원 참 이거 볼 때마다 기분 나빠. 작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왜요? 기념우표에 작품이 들어가면 가문의 영광 아닙니까? 내 작품을 쓰기만 하고 돈 한 푼 안 줬어. 순간 나도 모르게 욱했다. 돈 안 주면 안 되죠. 우린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