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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13. 2023

#27 영월종교미술박물관 4부(완)

기타종교관은 가톨릭관 바로 옆에 나란히 있었다. 불현듯 왜 이곳이 영월 '가톨릭'미술 박물관이 아닌 '종교'미술 박물관인지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성상 작가이고 대부분의 작품이 가톨릭 신앙을 표현한 것들인데, 왜 굳이 다른 종교의 작품까지 함께 전시하는지 의아했다. 전시는 작품들을 꿰뚫는 동일한 맥락(가령 '같은 종교'와 같은 것)이 있을 때 더 크게 와닿기 마련이다. 주제가 분산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산만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타종교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나의 걱정은 오만함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안다고 했듯이 내 종교에 장점이 있다면 다른 종교의 비슷한 현상과 비교해 보았을 때 비로소 아는 것이고, 단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남의 종교를 보았을 때 가능하다. 이처럼 종교를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나의 종교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고마워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따라서 이것은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실존적 관념'이라 할 수 있다."




전시의 초입에는 작가의 말이 마치 나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잠시 부끄러웠고 크게 깨달았다. 다른 종교를 향한 작가의 포용력, 자신의 종교에 천착하는 간절한 신앙심, 그리고 예술을 매개로 그것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능력과 정성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왜 이곳에 타 종교의 미술품이 함께 있는지를, 왜 이곳이 가톨릭 미술관도, 종교 미술관도 아닌 종교미술박물관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작가에게 조각은 예술의 매개를 너머 구도의 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겸손한 태도로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기타종교관에는 국내 민속신앙을 비롯해 불교, 힌두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엔 최바오로 작가가 아닌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그 수가 적지 않다. 가톨릭관이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공간이다. 작가가 작업한 다른 종교 작품은 그가 전해주는 타인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나의 이야기만 듣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봐. 그리고 다시 나와 이야기 나누자. 그리고 자네의 생각도 말해 주면 좋겠군."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최바오로 작가가 다시 나타났다. 




어때? 잘 봤어? 네. 기타종교관도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은 충만했지만 한풀 겸손해진 나의 눈에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박물관 입구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 그리고 그 뒤로 십자가, 솟대, 석불, 다산을 기원하는 석상이 보인다. 이처럼 여러 종교의 상징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곳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둘러보는 나와 흥겹게 설명하는 작가, 그렇게 우리는 여름 볕 아래서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 뒤에도 다 조각들인가요? 그래, 그 뒤로는 동산처럼 내가 꾸며놨어. 나 혼자 꾸민다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그 뒤로도 다 볼 거야? 네, 온 김에 다 봐야죠. 그래, 그럼. 열심히 봐주니까 고맙구먼. 이제 전시관 문은 잠그도록 하지. 작가는 전시관 문을 닫으러, 나는 박물관 뒤편의 동산으로 올라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것만 같은 천사들, 금방이라도 춤을 출 것 같은 소년과 소녀상, 그리고 예수의 십이사도를 표현한 조각들까지. 자그마한 동산의 능선을 둥글게 감싸며 조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지막 조각까지 보고 나니 어느덧 이곳에 온 지 3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아쉽지는 않다. 어차피 다시 올 것이니까. 나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차로 돌아가 시동을 켜고 핸들을 꺾는다. 곧이어 정문으로 나가려다가 잠시 멈추고는 다시 조금 후진을 한다. 아무래도 그냥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 두어 번 큰 소리로 부르자 인기척이 들리고 이윽고 전시관 옆 자택으로 보이는 건물 2층에서 그가 다시 나타났다. 이봐! 밥 안 먹고 그냥 갈 거야? 물론 내 넉살로는 점심뿐만 아니라 내일 아침까지 먹고 갈 수 있지만 여행이란 것은 종종 아쉬울 때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만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그도 식사 중에 급하게 인사를 하러 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찬 바람 불면 또 올게요. 꼭 올게요! 그래! 나도 사실 CCTV로 다 지켜보고 있었어! 또 보자구! 가볍게 손을 흔드는 그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는 차에 올라탄다. 좁은 농로를 지나는 기분이 아침처럼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신이 난다. 나는 오늘 멋진 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꼭 이곳에 다시 올 것이다. 나는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겨울이 기다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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