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만찬
어쩌면, 잘 산다는 건 한 끼를 잘 먹는 것 아닐까.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배부를 때.
하루를 잘 살고 있음을 되짚는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누구라도 먹을 걸 빼놓을 수 없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참말로 복스러운 생각이다.
여행에서 내 소박한 지론은 숙소에서의 식사는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아침 일곱 시에 잔뜩 낀 눈곱을 떼며 달려가고 싶다면 말할 것도 없다.
처음은 뭐든 기억에 남는 법이라고 하지만, 내게 첫 해외여행은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32살이 되어서야 일본으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필연적으로 숙소에서의 식사를 더 신경 썼다.
나중에 여행의 하루를 되짚었을 때, 그 하루는 잘살았다고 떠올리게 해 줄 테니까.
후쿠오카는 명란과 모츠나베(대창전골)가 유명하다.
줄기차게 찾아본 정보로는 그렇다. 그래도 그런 정보가 무슨 소용인가?
한 끼 제대로 먹어보지 않으면, 그것 또한 밥상물림 아니겠나.
흰쌀밥에 명란을 가득 올리고 구운 김을 차분히 뜯어 예쁘게 말았다.
돌돌 만 김 사이로 명란이 적당히 튀어나와 눈을 즐겁게 한다.
입에 넣고 굴리는 명란의 적당한 짭조름함이 식성을 제대로 자극한다.
바스슥 거리는 김 사이로 명란이 빈틈없이 맛을 드러내고선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부드러움처럼 어느 순간 사라졌다.
후쿠오카에서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게 명란일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정말 그랬다.
똑같은 양과 똑같은 밥으로 한 번 더 잘 감싸 입으로 다시 넣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제야 바다 건너 산 건너 일본에 왔음을 실감했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줄 명란은 알알이 나에게 침잠했다.
어느새 빈 공기를 다시 채우며 김이 나는 모츠나베(대창전골)의 향을 맡았다.
다른 곳은 이 모츠나베를 빨간 국물로 만들어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잡았다던데 여긴 아니다.
정통적인 모츠나베의 맛을 내는 간장베이스다. 갖가지 야채와 깨끗이 손질된 대창이 뽀얗다.
그것들을 숟가락에 듬뿍 담아 국물과 함께 음미했다.
아니, 들이켰다. 첫 입을 넣었을 때 맞이한 감칠맛에 국물만큼 침이 나와 버렸다.
두 입째를 넣어서야 대창의 기름과 야채가 어우러진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일본은 온천으로 유명하다던데, 야채와 대창의 온천은 이 모츠나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녀석들 나보다 더 온천 제대로 즐긴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앙큼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정만 아니라면, 이 온천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온몸을 맡기고 싶었다.
이른 아침에 먹은 맛있는 한 끼 때문일까.
그날의 하루는 행복했고, 더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 이 날을 떠 올려보면 아마도 맛있게 먹은 한 끼 때문일 거다.
한 끼를 잘 먹는 건 정말로 잘 살아가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