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데우는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면, 나는 시간을 건너 돌아가는 것 같다. 평범한 재료들이 뜨거운 물에 제 몸을 내던지며 우러나온 구수한 향, 향을 머금은 한 모금에 스며든 추억이 나를 녹진하게 만든다. 매번 다른 재료로도 언제나‘우리 집 맛’이라 불리던 그 된장찌개의 깊은 맛. 단지 음식이 아니라 나의 일상, 나의 기억, 그리고 마음속 나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나는 된장찌개가 싫었다. 별거 없는 재료에 짠맛이 강해 밥을 많이 먹어야 했다. 한 입 가득 먹은 때라면, 조금 남은 국물에도 짠맛으로 입안을 한참 뒹굴어야 했다. 한 끼 식사보다는‘어른들이 좋아하는 맛’이라 생각하며 입 안에서 굴리기만 했던 그 맛이, 어느덧 나이를 먹으니 나를 위로하는 맛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된장찌개 한 그릇이면 다시 나를 품어준다. 집 밖에선 그 감각이 늘 그립다.
한 번은 늦은 밤,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된장찌개를 데운 적이 있다. 조용한 부엌에서 조명 하나를 켜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그릇을 마주하며 한 숟가락 떠먹던 그 순간, 찌개 한 숟갈에 따뜻함이 스며들면서 문득 눈물이 났다. 일상에 치여 가슴 한편이 비어 가는 느낌이 들던 시절, 된장찌개는 묵묵히 나를 보듬어 주었다.
된장찌개는 빠르고 화려하게 끓여내는 음식은 아니다. 천천히, 재료 하나하나가 제 맛을 우려내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게 꼭 내 삶 같았다. 세상이 자꾸 빠르게 어딘가로 나아가기를 종용해도, 된장찌개처럼 나의 자리에서 나의 속도로 끓어가는 삶. 그런 삶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진다. 어쩌면, 된장찌개 한 그릇이 내 마음을 진하고 깊이 있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같이 비가 올락 말락 한 날에는, 뜨거운 된장찌개 한 그릇을 끓이고 싶다. 뜨거운 두부와 국물을 입안 가득 넣고 굴리다 보면, 그 뜨거움이 나에게 스며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