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 끼 찬가

같이 밥 먹읍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말고

by 현묵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살면서 참 많이 듣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인사말 중에서 가장 흔할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에게, 회사에서 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얼마나 진심으로 하고 있을까?


"다음에 밥 한번 먹자."

"그래, 시간 되면 연락해."


그리고 결국 그 밥은 먹지 않는다. 서로가 바쁘겠지라는 지레짐작과 흔하게 쌓이는 인사말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 약속을 의식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그 말을 건넴으로써 관계의 유효기간을 잠시 연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가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관계의 끝자락에 놓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흔한 인사말이 돼버린 이 말은 관계의 서먹함을 메우기 위한 완충재처럼 이곳저곳에 쓰인다. 대화가 끊길 때, 어색한 공백이 흐를 때, 우리는 기약 없는 그 말을 꺼내 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요. 언제 한번 밥 한번 먹어요.'라고 응답한다.


이런 인삿말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암묵적으로 그래도 여전히 우리 관계는 어딘가 쯤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동시에 지금은 어떤 관계로 정의되기는 어렵다는걸 뜻한다. 관계를 완전히 놓지 않고 어딘가에 묶어 두기 위한 장치처럼 말이다. 하지만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어떤 경우에는 진심일 때도 있다. 바로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는 '언제'를 떼내어 낼 때다.


얼마 전, 마음이 복잡했던 날이었다. 문득 혼자 먹는 밥이 지겨워 친구에게 연락했다. "야, 우리 진짜 밥 한번 먹자." 친구는 잠깐의 침묵 끝에 "그래. 8시쯤?"이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뒤 국밥집에서 마주 앉아 국밥을 푹푹 퍼먹었다. 오랜만이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국을 한 숟갈 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예전의 추억을 꺼내며 웃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온전히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새삼 느꼈다. 편하게 즐긴 짧은 시간 속에서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정말로 이루어질 때, 관계는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언제 밥 한번 먹자'가 관계의 끝자락에 놓인 말이라면, '같이 밥 먹읍시다'는 관계의 시작점에 놓인 말이다. 전자가 형식적인 인사에 가까운 말이라면, 후자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마주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친밀한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같이 밥 먹읍시다'라고 제안하는 말은 관계를 재정립할 시간을 제안하는 것과 같다. 다소 어색한 관계의 사람이 만나 밥상에 마주 앉아 상대와 같은 리듬으로 식사하는 일은 서로의 삶에 작은 틈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 틈에서 우리는 숟가락을 들며 서로의 표정을 읽고, 물 잔을 건네며 호의를 마주하고,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 들며 생각의 리듬을 맞춰본다.


얼마 전, 같은 모임을 하던 지인에게 모임이 끝난 후 "같이 밥 먹읍시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둘이서요?"하고 되물었다. 나는 웃으며 "네. 둘이서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설프게 근처에서 식당을 서성이며 찾아 나섰다. 조금의 어색함이 담긴 식사 자리에서 지인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둘이서 식사하는 건 또 처음이네요', '사실 모임 끝나고 나면 같이 밥 먹자고 하고 싶었어요.'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밥을 먹으며 마음을 나눴다. 그래도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는 모자랐다. 아쉬움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바닥의 누룽지를 긁어대다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설핏 웃었다. 우리는 눌은 것들을 긁어대듯 호의와 좋은 마음을 천천히 곱씹으며 다음 밥 한 끼를 약속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 그 말이 흔히 관계의 끝을 잡아끄는 인사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정말로 같이 밥 먹자는 말로 시작되는 관계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바쁘더라도, 피곤하더라도, 가끔은 같이 밥 먹자는 말을 건네야겠다. 밥 한 끼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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