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서
연약함 속에 존재를 이어가다가 우연하게 죽는다.
이 짧은 문장은 삶이 버거울 때 제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보호받아야 했고, 성장하면서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넘어져 까진 무릎을 어루만지며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몸의 상처는 금세 아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말 한마디, 사소한 오해, 예기치 않은 이별 같은 것들은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상흔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상처받고 치유되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연약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된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나뭇가지는 바람에 휘청거리면서도 끝내 버텨 내었습니다. 가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깊이 뿌리내린 나무의 힘 덕분이겠지요. 우리의 하루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같을지 모릅니다. 휘어지고 상처받고 연약하지만,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삶에 대한 의지 일 겁니다.
우리는 왜 하루를 살아내려 애쓰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그러길 바라서 일 겁니다. 태어나는 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건 온전히 우리 몫입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각자 삶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죽음이 우연이라면 삶 또한 우연일 겁니다. 우연히 태어나고, 우연히 누군갈 만나고, 우연히 사랑하고, 우연히 상처받습니다. 그러나 그 우연 속에서 우리는 필연을 만들어 갑니다. 사랑을 선택하고, 관계를 이어가고, 때로는 상처받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길 바라며 스스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갑니다.
연약함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연약하다는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상처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고, 누군가와 관계 맺고, 그 안에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연약함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 연약함이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습니다. 상처받더라도 괜찮습니다. 흔들리더라도 버틸 겁니다. 삶이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사랑하고 사랑받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려는 모든 과정이 제게는 의미가 될 겁니다. 또 그러길 바랍니다.
제 삶은 연약함 속에서도 존재하고, 조금 무르더라도 잘살아 낼 겁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저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휘어질 겁니다. 그렇게 하루치만큼의 연약함을 안고서 살아내려 합니다. 삶이 우연이라면, 저는 그 우연을 온전히 받아들여 하루를 살아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