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8년차, 나는 한때 ‘열정의 아이콘’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 앉았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에 몰입하는 동안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다. 출근길이 두려워지고, 일요일 저녁이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작은 실수에도 자책이 길어졌고, 동료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나는 번아웃에 깊이 빠져 있었다.
번아웃은 생각보다 교묘하게 다가온다. 처음엔 그저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고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좋아하던 일조차 의욕이 사라지고, 내 안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시기, 나는 내 삶의 바닥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작은 루틴들이었다.
첫 번째는 ‘아침 햇살 받기’였다. 출근 전 10분,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햇살을 쬐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햇살이 내 얼굴을 스치고, 바람이 뺨을 간질이면, ‘아, 나 아직 살아 있구나’라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두 번째는 ‘퇴근 후 나만의 식사’다. 예전엔 귀찮다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충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하지만 번아웃을 겪고 난 뒤, 하루에 한 끼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직접 차려 먹기로 결심했다. 계란 프라이 하나, 신선한 채소, 좋아하는 김치, 따뜻한 밥. 소박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식사는 내 삶에 작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그 한 끼를 먹으며 ‘오늘도 나를 잘 돌봤다’는 뿌듯함이 쌓였다.
세 번째는 ‘작은 기록’이다. 매일 밤, 오늘 느낀 감정 한 줄을 메모장에 적는다. “오늘은 힘들었지만, 햇살이 좋아서 조금 나았다.” “동료의 미소에 마음이 풀렸다.”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시간이 쌓이자 내 감정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든 날도 있었고, 괜찮은 날도 있었다. 중요한 건, 나는 그 모든 날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작은 루틴들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다. 여전히 힘든 날이 많고, 때로는 다시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이제 내 마음을 조금 더 잘 돌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회사에서의 성과, 타인의 평가, 빠른 성장만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침 햇살, 따뜻한 한 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이 소소한 루틴들이 쌓여, 나는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혹시 지금, 당신도 번아웃의 강을 건너고 있다면, 거창한 변화 대신 아주 작은 루틴 하나를 시작해 보길 권한다. 그 작은 변화가, 언젠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