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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08. 2023

달아 달아 밝은 닭아

달이라 부르니 너는 내게로 와 달이 되었다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3개월 정도만 맡아주면 안 될까?


이름은 달이라고 해.

필요한 것들은 내가 다 줄 테니까.. 라며 대학생 때 같이 공공근로를 하던 선배가 부탁을 해왔다.

드디어 '나만 고양이 없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온 고양이, 달이는 호기심이 많은 것이 나를 닮았었다. 

처음 낯선 내 집에 왔을 땐 어떻게 올라간 건지도 궁금하게 천장에 달려있는 신발장에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게 일상이었고, 공강 시간에 달이를 보러 가면, 사놓은 휴지며 가재도구들을 은하수처럼 흩뿌려 놓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나는 열린 문 사이로 내 눈치를 보는 달이를 째려보곤 문을 닫고 심호흡 몇 번 한 뒤 들어가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흩뿌려지며 부서지고 단출해진 살림살이들 덕에 달이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츄르와 장난감을 주문하고 실컷 놀아주었다. 봄날에 벚꽃 잎이 떨어질 때면 이쁜 꽃잎을 모아 두었다가 가만있는 달이의 얼굴에 얹으며 놀았다. 그 얼굴엔 '이게 재밌냐'라는 달이의 표정이 보였지만 너무 귀엽게 태어난 너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매번 말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달이와는 더 친해졌다. 불고기를 구워 놓은 접시에 자는 척하면서 빼먹으려는 발을 견제하고, 고양이 모래를 더 넣으라는 달이의 발짓에 답변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달이는 나에게 친밀함을 더 표현하곤 했는데 그게 바로 사진에 있는 '달이 된 달'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좌식책상에 앉아 책을 읽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달이는 독서대를 옆으로 밀어 놓고 스탠드 조명의 온열을 독차지했다. 덕분에 나는 한 손으로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명의 따뜻함을 알고 둥근달이 되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원룸의 좁은 공간에서 내가 이부자리를 펴고 잘라치면 조명을 켜둔 책상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나에게로 왔다.

그러곤 항상 머리맡에 달처럼 둥글게 둥글게 나를 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얼굴이 달에 파묻혀 있었는데,

작기만 한 녀석이 못난 나를 품어 줬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너를 달처럼 품어 준거라고 여겼다.


아쉽게도 시간은 훌쩍 지나고 달이를 찾아가기로 한 날짜가 다가왔다.

차로 이동 해야 했기에 케이지에 담긴 채 달이는 몸을 웅크렸다. 멀미를 하는 모습에 속상해 고양이 멀미에 좋은 노래를 틀어주며 속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도착한 달은 제 주인의 품에 되돌아갔다. 이내 나를 보고선 몸을 웅크리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했다. 나는 차마 무거운 발을 애써 떼며 인사를 건넸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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