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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12. 2023

비정식 작가라도 괜찮나요?

안될 건 없잖아요!


잡지 0°와 명찰을 받은 날, 210 페이지의 잡지다? 책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주관한 6인의 에디터와 2인의 에디터 겸 기획자의 여정이 끝났다. 비록 ISBN을 등록해서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진 않을 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책은 이미 우리 눈앞에 있었으니까. 기쁜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지어내 속으로 비정식작가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붙였다.

나는 비정식 작가다! 


한 에디터 분은 보자마자 퀄리티가 너무 좋다며 독립 서점에 가져가 매대에 올려보자고 건의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와중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추임새를 넣으며 책을 펼쳤다.


책은 저항 없이 양 쪽으로 갈라지며

겨울꽃처럼 글과 사진을 피어낸다.

에디터들의 개성이 담긴 페이지와 최선을 다할 거라던 기획자의 말이 함께 사르륵 넘어간다.

글씨가 익어 글이 맺히고 문장이 영글었다.

에디터들의 사진은 형형색색의 꽃봉오리였다.


영도의 공간과 해설사의 인터뷰가 있는 챕터도 있고,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동네의 멋진 홈바를 추천하기도 하고, 카페와 맛집, 골목길의 감성을 비추기도 한다.

캐릭터를 직접 그려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적은 것보다 적지 않은 개성이 훨씬 많았다. 그야말로 각자의 개성이 제철을 만난 듯 책에 피어났다.


난 게으른 사람들의 개성을 대변하고자 (분량이)적은 글로 여백을 여몄다.

하고 싶은 대로 해보시라는 기획자의 말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진짜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단체 사진을 보니 두 달여간의 짧으면서도 길고, 따로 또 같이 한 여정이 끝난 게 실감 났다.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인데, 우리의 끝은 한 권의 책으로 남았으니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치고는 제법 낭만적인 셈이다.

나는 이리저리 촐싹이는 속마음을 즐기며 방실거렸다.

덩달아 촐랑이려는 몸은 에디터 명찰로 겨우 고정해 놓았다.

명찰은 한 기획자 분의 깜짝 선물이었는데 마치 졸업 선물을 받는 듯했다.


한 기획자는 이 프로젝트를 해내면 난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는 소회를 풀었다.

다른 기획자는 일과 학업, 프로젝트 등을 병행하느라 힘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다들 그럴만했다며 노고에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나는 소회를 푸는 대신에 제일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마 글만 따지자면 내가 분량이 제일 적을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고,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실 실제로 잡지 원고를 작성하는 건 품이 많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게 내가 써온 글이었는지를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운 자국과 쓸 공간의 명암이 회색빛이 되어 별 차이가 없어질 즈음에서야 간신히 내 글을 적었고, 적은 후로는 쭈욱 글을 끌고 나갔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지만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좀 더 고민해 보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사진의 배치는 내가 원하던(이상한) 구조를 기획자께서 고생하며 뜯어고치고

사춘기를 겪는 듯 헤매는 글은 기획자께서 회초리를 들고 오신 선생님처럼 명쾌하게 퇴고해 주었다.

정작 이렇게 적으니 나는 별로 한 게 없는데 속으로 비정식 작가가 됐다며 좋아한 게 들통나 버리겠지만 어차피 사실이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비정식 작가다. 책도 이미 1쇄가 나왔으니 무를 수도 없다.

2쇄가 나온다면 매대에서 팔릴 가능성도 있으니 비정식 작가를 물리고 출간 작가로 타이틀을 바꿔줄 수는 있다. 그런 호의를 발휘할 마음은 이백프로 있다. 연락 주세요. 010-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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