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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10. 2023

우울한 건 국밥을 안 먹어서 그래

나를 데우는 시간

우울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놈이 나를 휩쌀 때를 나는 최근에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착 가라앉고 기쁠 일이 없을 것 같은 상태. 얼마쯤 지나도 고개를 못 내미는 부표처럼, 어디에도 대가리를 드밀지 못한다. 하루가 왠지 허무하고 무색무취였다며 자조한다. 평소엔 유달리 손이 따듯하다며 저 멀리 뻗지만, 내 품도 못 헤어 나오고 굳어있다.


나는 어차피 나가서 국밥을 먹어봐야 달라질 것 없다는 생각을 제법 어렵게 해치웠다. 가장 편한 옷을 꺼내어 비척이는 발모양을 다잡으려 땅으로 땅으로 고개를 숙이고 구겨지듯 나아가듯 겨우 국밥집에 갈 수 있었다. 환한 실내는 정확히 내 심장과 대비되는 듯했다. ‘고작 더 섞인 걸 먹으려 이천 원이나 더해 모둠국밥을 만들어 놓았단 말이지.. 그런 상술은..’ 나는 더 이상 시꺼먼 내 속에 지지 않고 모둠국밥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서야 그릇 안 찬 밥이
뜨거운 육수를 만나 데워진다
그제야 국밥은 온기를 얻는다


국밥집에 앉아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주문을 하니 아주머니 옆에 빼곡히 쌓인 국밥 그릇에 가닿았다. 그릇에 눌러진 찬 밥알들이 뜨거운 육수를 품었다가 놓아주며 열기를 조금씩 훔쳤다. 몇 번인가를 그렇게 토렴 되어 적당히 온기를 품은 밥알은 곧장 고기, 양념에 깔려 주인공을 양보한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모진 구석에 내리눌러지곤 조금은 납작해져서 그것이라도 원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뜨거운 육수를 품고 정신없이 뱉어내고야 마는 그런 밥알, 나를 스치고 간 세월이며 사람이며 문장이며 글이 나를 덥게 하고 부어내면서 처음부터 그건 나의 골수에서 나온 것인 양 온도를 뽐내는 나의 자태를 상상하며 물끄러미 국밥을 보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기 전에 얼른 수저를 들었다. 뜨거운 내장에 김치 한점, 뜨거운 고기에 된장 찍은 양파, 미지근한 밥알에 깍두기 한 점. 땅으로 처박던 고개를 그릇에 대신 박았고, 땀을 방울내어 흘렸다. 곤죽이 된 밥알이 되고도 헤어지기 싫어 국밥에 쏘주 한 잔! 을 외치던 시절이 설핏 생각나 웃었다.


잠시 두 눈을 꼭 감아 밥알의 온기를 기억했다. 고작 국밥 한 그릇에 세상의 온기를 느끼는 나의 우울이 좀 싱거웠다. 그렇게 싱거운 내 밥알의 온기는 쪼그라져도 세상의 온기를 끼얹어 줘야 한다는 걸 기억했다. 포만감인지 행복감인지 때문에 국밥 집을 나서는 길에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입김도 나오지 않는 날씨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가끔 이렇게 육수를 끼얹어 온기를 가지는 밥알처럼 살아가는 건가. 인제는 조금의 우울이 찾아올 때 재빨리 국밥집을 찾아 나를 데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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