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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Feb 06. 2023

비냄새를 맡으며



 얕은 웅덩일 박찼다. 쪼그마한 발길질에 발까지 튀는 물길에 꺄르르하고 웃고야 만다. 초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부모님에게 날씨가 흐릿하면 당신도 비 냄새가 나는지 물었다. 비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면, 샛노란 장화에 커다란 우비를 뒤집어쓰고, 제 몸만 한 우산을 덜렁이며 비냄새를 머금고 있을 웅덩이를 향해 뜀박질했다. 그리 뛰어서 웅덩이를 마주하면, 크게 한 숨 들이켜 비냄새를 양 껏 마시고 전투에 승리한 장군처럼 큰 걸음으로 웅덩이를 갈랐다.

 

 그러다 비 냄새를 잔뜩 머금은 소낙비가 들이치면 웅덩이 옆에 쪼그려 앉아 곱게 퍼지는 동심원을 보며 개구리처럼 울었다. 같이 우는 청개구리가 웅덩이를 차지할라 치면 뺏길세라 비냄새를 머금은 뜀뛰기로 거친 동심원을 내뱉곤 했다. 그렇게 뱉어진 동심원은 첨벙 튀며 나아가고, 웅덩이를 넓혀갔다. 뭣도 모르던 개구리 눈알에 물세례가 들이닥치면 서럽다는 듯 제 짝에게 벅벅 울어댔다. 그러면 난 또 두어 번의 울음을 따라 낸 뒤 웅덩이를 가로지르며 비냄새를 맡았다.


  맑은 날 뭉게구름에서 내리는 비냄새도 참 좋다. 봄날에 어쩌다 내리는 여우비에 호들갑 떠는 친구를 볼 때면 남몰래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러면 보도블록에 조금씩 묻어 나온 습기가 반긴다. 모래와 돌 조금의 냄새가 날 습습하게 한다. 조금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들고 다니던 친구에게 우산을 건네고 고개를 꺾듯이 들어 비냄새를 맡는다. 눈을 감아야 느껴지는 여우비의 부딪힘이 인연인가 사랑인가 아님 또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며 무어라 부딪힘의 이름을 붙였다. 


 그래도 가장 좋은 비냄새는 먹구름으로 세상이 어스레 해지는 날, 서둘러 창을 활짝 열고 맡는 세상 깡그리에서 오는 넉넉한 비냄새다. 왜 좋은 건 짧다고 하는지, 비냄새도 짧게만 맡아지는 건지. 그런 날 샛바람에 비냄새가 타고 오면 맡기 무섭게 비가 쏟아져 내린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에 얼른 창을 닫고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나오는 비냄새에 싱긋 웃는다. 비냄새를 맡으며 보는 비는 왜 그리 좋은 건지. 마음을 쏟아내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이 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창을 보니 내게도 어느새 비냄새를 닮은 마음냄새가 나는 듯했다. 조금 더 마음을 쏟아내서 마음 냄새나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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