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고민
거대한 공룡들은 한때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빙하기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멸종해 버렸다.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으로 그 존재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생명체만이 아니다. 기업 역시도 그러하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던 노키아(NOKIA)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필름 시장의 절대적 존재였던 코닥(KODAK)은 파산의 절차를 밟았다.
이처럼 변화에 대한 대처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대응은 생명체나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점이나 음식점이 모여있고 소비활동이 이루어지는 쇼핑 상권 역시도 항상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일산의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였던「라페스타」를 들 수 있다.
라페스타의 몰락과 배경
라페스타는 경기도 일산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역으로는 정발산역 인근에 있고, 인근에는 일산 호수공원이 위치해 있다. 라페스타는 일산 신도시가 한창 개발 확장중이던 2003년에 개장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인근에는 쇼핑할만한 곳이 없었기에, 라페스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때는 보증금 및 임대료와는 별개로 권리금이 1억원까지 붙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현재는 권리금은 커녕 고점대비 보증금 및 임대료는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임대를 구한다는 현수막만 나부낄 뿐이다. 라페스타가 넓은 광장 옆에 붙어 있어서인지 때때로 더욱 텅 빈 느낌을 안겨준다.
라페스타의 몰락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첫째, 교통수단의 발달로 일산 상권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다. 자가용은 물론 대중교통의 발달로 사람들을 지역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큰 어려움없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즐길 수 있다. 자가용으로 1시간 남짓이면 명동이나 강남으로 넘어갈 수 있다. 서울로 나가면 더 많은 꺼리가 있다. 쇼핑은 물론 다양한 F&B가 존재하기에 궂이 일산 라페스타에 있을 이유가 약해져 갔다.
둘째,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한계이다. 어느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리고 인기가 높아지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자연스럽게 땅값이 올라간다. 돈이 되는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가 한계점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유입력이 약화된 지역일 수록 추락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작은 가게 한개 운영할 수 있는 권리금이 1억원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인기있는 컨텐츠가 새롭게 유입되기는 어렵다.
셋째, 일산 지역 인근에 막강한 경쟁점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산에서 자동차로 30분만 가면 고양 스타필드와 가구계의 공룡 이케아가 있다. 스타필드에서는 모든 소비활동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항상 새로운 재미와 함께 편안함도 느낄 수 있다. 이케아에 가면 쇼룸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먹거리의 즐거움은 덤이다. 그러나 일산 라페스타에는 없다.
넷째, 온라인 소비의 확산은 라페스타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라페스타는 구획별로 F&B와 쇼핑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쇼핑 구간에는 의류, 패션잡화, 악세사리 등 다양한 매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매장별로 특색은 없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매장들이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음은 물론 휴대폰으로 검색만 하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니 궂이 라페스타를 찾을 이유가 사라져 갔다.
라페스타의 부활을 바란다.
지역의 주요 상권이 무너져 버리면 그 지역 자체의 활기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 활기가 사라진 상권은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상권에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다른 방법으로 고민하고 접근한다면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의 활력을 찾았으면 한다.
라페스타 부활을 위한 방안
첫째, 임대인들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모아야 한다.
활력을 잃은 상권의 몰락은 가속화 될 수 있다. 상권이 활력을 잃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다. 그러면 당연히 매장 매출이 줄어들고 공실이 나온다. 공실률이 높아질 수록 상권은 더욱 침체되어 간다. 이런 악순환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현재 남아있는 임대인들의 변화를 위한 의지가 중요하다.
압구정로데오도 한때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강남과 잠실 상권으로의 이탈로 인하여 해당 상권의 공실률은 높아져 갔다. 그때 임대임들은 의견을 모았다. 반값 임대료 카드를 먼저 꺼내들고 임차인들을 달래면서 활력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컨텐츠들이 유입되면서 활력을 다시 되찾아 가고 있다.
비록 일산 라페스타 상권도 고점대비 떨어진 보증금과 임대료를 감안하면 압구정로데오와 같은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 외부 전문가(디벨로퍼)와의 협업을 통한 변화의 의지를 높일 수 있다. 대표적인 디벨로퍼로는 연남동의 변화를 만든 어반플레이나 광교 앨리웨이를 운영하는 네오밸류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일산 라페스타의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컨텐츠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새로운 것은 완전한 무(無)에서 창조되지 않는다. 기존의 것을 접목시키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야 이질감 없이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더현대 서울은 오픈 이후 2년간 30대 이하 고객이 5000만명이 방문을 했다. 20~30대 인구가 1300만명임을 감안하면 평균 4회씩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더현대 서울의 인기 요인은 다양한 컨텐츠는 물론 기존 백화점과 다른 내부 구조의 역할이 크다. 천장을 유리로 해서 자연 채광을 즐기고, 그 아래에는 전층이 숲(forest)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넓은 동선과 전층을 아우르는 인공 폭포는 다른 백화점에서는 볼 수 없는 경험이다. 그런데 더현대 서울의 독특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은 원래 해당 건물을 지을 때 백화점이 아닌 쇼핑몰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백화점의 바닥 타일의 구획이 나눠있지 않다. 백화점은 통상 바닥 타일을 브랜드의 경계를 짓는 데 더현대 서울은 애초에 쇼핑몰을 짓다가 계획을 변경해서 백화점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새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산 라페스타를 감안해 보자. 라페스타는 여러개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지만, 건물 중간의 넓은 동선이 있다. 이곳을 유럽식 광장과 같은 역할로 활용하는 것이다. 유럽에는 크고 작은 광장이 분포해 있다. 그곳에서는 넓은 광장에서 카페에 앉아서 교류를 하고, 다양한 소통과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그 광장으로 모인다. 그렇기에 라페스타의 넓은 거리이자 동선을 유럽식 광장의 이미지를 착안한다면 다른 느낌으 전달해 줄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내다.
혼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잘하는 분야의 그룹과 협력을 한다면 제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라페스타에서 자동차로 30분 남짓 가면 헤이리 마을이 있다. 출판단지를 비롯해서 다양한 문화적 컨텐츠가 충분하다. 헤이리마을이 비록 같은 일산지역은 아니지만 경기도 차원에서의 지역 활성화를 위한 협력을 추진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라페스타에 헤이리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컨텐츠를 접목시켜 보자. 새로운 컨텐츠를 통해서 사람들이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즐거운 경험을 즐길 수 있게 하자. 서울 도심까지 나갈 필요없이 이곳에서만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말이다.
컨텐츠 측면에서 조명이나 레이저쇼와 같은 밤에 진행하는 연출이 주는 환상적 분위기로 사람들을 매료시켜 본다면 어떠할까 싶다. 더군다나 그 조명 연출이 건물을 통째로 감싸서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는 매년 겨울마다 건물을 에워싸는 크리스마스 연출을 진행한다. 즐거운 볼거리로 저녁시간이 되면 수많은 인파들이 몰린다. 추운 겨울임에도 말이다. 또한 일본의 한 테마파크에서는 매일 저녁이 되면 건물이 둘러싸인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바로 삥 둘러감싼 건물에 레이저를 쏘면서 멋진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이와 같은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비싼 장치 임대료와 컨텐츠 제작비가 소요된다. 하지만 상권을 되살리는 입장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순간적 손익이 아니라 상권 자체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접근해 볼만하다.
지리학자 이푸투안은 '공간에 경험을 더하면 장소가 된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지역별로 수많은 공간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말이다. 꽃이라 불러주는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듯이 말이다.
활력을 잃어가는 상권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에 마음이 아프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상권도 그렇다. 보세 거리로 유명했던 이대 상권도 그러하다. 한때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영원한 것은 없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만큼 소비자의 발길은 냉혹하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려서 그 지역만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매정했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