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타야 & 무신사스튜디오
일본에는 대형 서점을 1400여개 운영하는 업체가 있다. 그런데 그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팔지 않는다. 책과 연결점이 있는 제품들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여행 관련 서적을 찾으러 가면, 여행 지도나 관련 물건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하물며 컨시어지라는 전문가들이 상주하면서 여행지 추천을 해주거나 여행 일정을 직접 짜주기도 한다.
이 서점은 바로 마스타 무네아키 대표가 운영하는「츠타야(TSUTAYA)」서점이다. 그리고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업체의 이름은 OO문고 혹은 OO서점이 아니다. CCC(Culture Convenience Club)라고 한다. CCC가 추구하는 업의 본질은 '문화(컬쳐) 인프라 제공업'이기 때문이다. 츠타야 서점은 단순히 책을 포함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책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제안한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경험의 인프라를 쉽고 편리하게 느낄 수 있게 하려 한다.
츠타야 서점은 공간과 그안에 녹여진 상품을 경험하는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일례로 지금의 츠탸야 서점 대형화의 시초가 된 도쿄 다이칸야마 T사이트가 만들어진 배경을 들 수 있다. 마스다 대표는 T사이트를 기획하면서 도심 한복판이 아닌 주택가로 부지를 선정한다. CCC의 이념과 같이 사람들의 삶과 가까운 곳에서 녹아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이용 타겟도 보통 생각하는 20~30대의 젊은 층으로 하지 않았다. 부지를 선정한 후 주변을 곰곰히 살펴보니, 여유롭게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시니어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T사이트를 기획하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지금은 시니어층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와 같이 CCC는 당장의 매출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본질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츠타야 1호점이 오픈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꾸준한 성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업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할 때 당장의 매출만을 바라본다. 기업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고객은 '제품을 사는 존재'일 뿐이다. 판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익 창출이라는 부분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 관점이라는 한정된 시각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반면에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은 다르다. 고객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고객이 '무엇을 느끼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고객이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에 관심을 갖는다. 삼성 휴대폰은 기능과 성능을 애기할 때, 애플은 사용자의 표정과 감정을 담으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츠타야을 운영하는 CCC는 본인들은 '운영은 하지 않고 기획만 파는 곳'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지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브랜드로 끌어당긴다.
첫째, 버리고 더하다.
신당점 건물의 외관은 오래된 건물 그대로이다. 한쪽 켠에 있는 출입구 위에 붙어 있는 'MUSINSA STUDIO'라는 사이니지가 없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이다. 하지만 작은 사이니지이지만 오래된 건물에 앉혀져 있기에 더욱 크게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한껏 치장한 외장재로 건물을 마감했다면 작은 사이니지는 묻혔을 것이다.
내부 역시도 화려하지 않다. 최대한 많은 것을 버리고 걷어낸 후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진행한 것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으로 공간을 구성함으로서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다. 천정 역시도 층고가 높지 않기에 오픈 천장을 가면서 메탈 트레이에 간접 조명만으로 포인트를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버렸기에 필요한 것만을 더할 수 있었다. 무작정 많은 것을 더하려 하지 않았다. 고객(입주사) 입장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한 기능만을 더했다. 가령, 패션업체 중심의 입주사를 고려해서 지하 1층에 별도로 구성된 워크룸에서는 편리하게 재단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STUDIO'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품 촬영을 위한 부대 시설을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시설적으로는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았으나, 기능적으로는 최대한 담아내려 하였다. 그것도 바로 고객 관점의 기능만을 말이다. 입주사의 창업 환경을 위한 부대 시설 규모를 볼 때 도리어 오피스 공간을 너무 포기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령 패션 기업 중심의 입주사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창고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남는 공간에 임대용 오피스 공간을 만드는 대신에 다양한 규모의 창고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과 배려는 5호점까지 이어지는 경험과 노하우가 녹아든 결과물일 것이다.
둘째, 임대업이 아닌 파트너십을 택하다.
무신사 스튜디오가 진행하는 것은 엄연히 공유오피스 사업이다. 대표적인 공유 오피스 기업으로는 '위워크'를 들 수 있다. 위워크는 단기간에 전세계적으로 지점을 확장하면서 성공적인 공유 사업 모델로 인정받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총 2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선도적으로 넓은 공간과 고급스러운 자재로 마감한 인테리어를 도입하여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위워크의 2019년 기업가치는 470억 달러(한화 62조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태생적인 영업적자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이기에, 자본잠식으로 인한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위워크의 현재 시장 가치는 고점대비 1%수준인 4억 달러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무신사 스튜디오가 진행하는 공유오피스 사업 자체도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결론은 '무신사 스튜디오는 위워크와 다르다'이다. 위워크는 자신들을 디지털 기업이라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임대업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건물을 임대한 후 고급 자재로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공격적인 지점 확대는 단기간에 손익을 맞추기 힘들다. 또한 공유 오피스의 강점으로 내부 네트워킹을 들지만, 만남의 자리에서 그칠 뿐 사업으로 확대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무실이 필요한 기업에게 공사할 필요없이 마련된 환경하는 게 전부이다. 또한 임대업이라는 사업 모델상 자본력 있는 다른 업체가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구조이다. 그만큼 차별화 요소가 약하기에 고객은 언제든 대체제를 구해 떠날 수 있다.
반면 무신사 스튜디오는 임대업이 아닌 파트너십 관계를 맺는다. 위워크와 같이 공유 오피스를 제공하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단순히 사무실 제공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이 신당점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엿보인다.
우선 신당동이라는 지역적 이점이다. 신당동에는 소규모의 패션관려 제품을 제작하는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소규모의 패션 기업이 샘플 제작 이후 소량 생산을 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더군다나 고객(입주사)과 영세한 공장들의 협력이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신당점 입주사끼리도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서 서로간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령 의류 라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기본 1만개 이상의 주문이 들어가야 하나, 협력을 통하여 500개 내외의 소량 생산도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무신사 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인큐베이팅 공간이라는 점이다. 공간 임대업에서 국한된다면 운영사 입장에서 고객은 공실률을 줄여주는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신사 스튜디오는 파트너십을 넘어서 입주사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 되는 건물을 운영하는 데에는 임대료 포함한 큰 고정비가 발생한다. 그래서 공간을 운영함에 있어서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냐는 질문에 신당점 담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무신사 스튜디오가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면 이런 공간을 운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주사의 인큐베이팅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다."라고 말이다. 단기간의 이익 추구를 바라는 기업 관점이 아니라, 무신사의 근간이 되는 크고 작은 패션업체의 성장을 바라는 관점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답변이다.
무신사가 무신사스튜디오를 통해서 바라보는 청사진은 무엇일까?
바로 무신사 발전의 근간인 중소 패션업체의 육성과 발전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시너지를 통하여 무신사를 중심으로 한 패션산업의 생태계를 키워나가려 하고 있다. 이를 <아마존 플라이휠(amazon flywheel)>을 활용해서 도식화해 보았다.
무신사 스튜디오는 파트너인 입주사가 더 편안한 구조와 환경에서 본연의 업무에 집중시키려 한다. 그럴수록 고객 관점에서의 제품을 통한 만족도는 제고될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파트너사의 규모는 성장할 수 있고, 파트너서의 생산을 담당하는 공급사(Supplier) 역시도 안정적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다시 좋은 제품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신사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인 스튜디오가 중심을 잡아주게 된다.
제품 혹은 브랜드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수익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업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고객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마존 임원 회의실에는 항상 '빈 의자' 한 개가 놓여 있다고 한다. 그 의자는 누군가 늦게 와서 비워져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절대 잊지 말라야 할 '고객의 자리'이다. 모든 관점의 시작과 끝은 고객이어야 함을 잊지 않으려 하는 의도적 행동이다.
고객이라는 대상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제품 판매 중심으로 본다면 구매하는 대상일 것이고, 공유 오피스와 같은 공간에서 본다면 이용하는 입주사가 된다. 고객의 대상이 달라지더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고객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관점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100km의 거리를 갈때, 시작점에서 1도만 달라져도 도착지점은 전혀 다른 곳이 되듯이 말이다. 고객 관점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의 결과물은 그리 머지 않은 순간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