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갈 파트너가 필요하다.
수년 전에 하프 마라톤을 뛰어 본적이 있다. 정확히 말해서 21.097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렸다.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의 나 혼자와의 싸움이지만 홀로 달렸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라톤 경험이 없던 내게 마라톤 경험이 풍부한 지인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 그랬기에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초반에 호기롭게 달려 나가면 속도를 조절시키고, 언덕에서 숨이 거칠어지면 절대 걸어서는 안 된다고 독려해 주었다. 목적지는 같지만 과정 상에서의 다른 역할을 했기에 함께 골인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공간을 구축함에 있어서도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는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중에서 가장 주요한 파트너는 공간 설계를 위한 그림을 그려주는 전문가 역량을 갖춘 설계사이다.
공간 설계는 건축주와의 협의를 통해서 총 4단계를 거쳐서 진행된다. 컨셉 수립에서 시작해서 실제 시공을 위한 세부 설계로 진행된다. 즉 개괄적인 아웃라인을 잡고 뼈대를 세운 후,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는 방식이다.
첫째, 방향 수립을 하는 '기획설계'이다. 시공 공간에 대한 이해 및 컨셉 수립 단계이다.
둘째, 공간의 밑그림을 그리는 '계획설계'이다. 평면도 수준에서 공간에 대한 뼈대를 세우게 된다.
셋째, 점차 살을 붙여 나가는 '기본설계'이다. 위에서 바라보는 평면도, 옆에서 바라보는 입면도를 앉히면서 구조계획과 설계계획을 수립해 간다. 통상 이 단계가 되면 시공사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단계이다.
넷째, 최종적인 도면을 바탕으로 확정짓는 '실시설계'이다. 시공사 및 하청업체 담당자가 세부적인 도면 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실시설계는 실제 공사를 진행하면서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점진적인 과정에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파트너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공간을 설계하기 위한 설계사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서 선발한다. 공간에 대한 각자의 해석 방식을 바탕으로 건축주가 생각하는 혹은 건축주가 생각하지 못한 그림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파트너가 선정된다.
하지만 엘큐브 이대는 백화점 내부 디자인 조직을 통해서 설계가 진행 되었다.
백화점은 다양한 공사가 이루어지기에 내부에 디자인 설계 역량을 갖춘 조직이 있다. 그래서 백화점은 대규모 점포 리뉴얼 혹은 신규 점포 오픈을 제외하고는 내부 인력을 활용해서 디자인 설계가 진행된다. 엘큐브 이대 역시도 상가 건물의 2개층만 리뉴얼을 하는 것이기에 내부 디자인팀에서 설계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층별 150평을 감안하면, 실면적 300평 규모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진행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300평 규모가 작지는 않지만 백화점 규모에 비하면 작은 규모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설계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기획설계'는 MD전략 조직에서 엘큐브 이대점에 대한 방향 수립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중국인 고객을 사로잡을 만한 핑크 컬러를 메인으로 잡았다. 내부는 중국인이 선호할 만한 뷰티/패션/팬시 브랜드로 방향을 잡았다.
그 다음에는 '계획설계'가 진행 되었다. 그러나 전체 면적의 25%를 라인프렌즈에 임대 방식으로 내줄 예정이었기에 디자인팀에서 크게 신경쓸 게 없었다. 핑크 컬러를 기초로 한 전체적인 톤앤매너와 가이드를 수립했다. 대신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물 외관 파사드에 가장 공을 들였다.
엘큐브 이대 공간 자체가 공간에 대한 경험적 요소보다는 틈새 시장 공략을 통한 매출 확보가 목적이었다. 그렇다보니 공간 설계 역시도 이용자의 경험보다는 입점 브랜드에 대한 공간 안배와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외적 디자인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계획설계 단계까지 이루어진 후에는 기본설계를 진행하면서 실제 공간 구축을 진행할 시행사가 선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성수동 공간>도 유사하였다. 하지만 <성수동 공간>은 구축 목적과 진행 주체가 달랐다. 과정은 유사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인 준비 과정은 크게 달랐다.
성수동 공간의 부지가 선정된 다음에는 공간 구축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 건축 설계할 파트너를 선정하는 게 급선무였다. 공간 구축에 대한 전문가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다듬어 나가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설계사를 선정하기 위한 작업은 성수동 공간 부지가 확정되기 전부터 진행되었다. 우선 우리가 원하는 공간의 방향을 수립하는 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우리가 '왜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구체화해 나갔다. 단순히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한다는 의미 그 이상이었다. 온라인에 국한된 우리 플랫폼만의 제품을 고객(서포터)이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전개하는 제품들은 아이디어성 제품이거나 아직 시장에서는 생소한 제품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품 경험에 대한 니즈는 고객 뿐만 아니라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는 공급자(메이커)에게도 중요했다. 그래야 플랫폼 거래에 대한 신뢰를 쌓고 제품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플랫폼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수동 공간을 준비하던 시점에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오프라인 진출이 많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신사나 W컨셉 등과 같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의 오프라인 진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발빠르게 진행함으로서 이러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방향성과 목적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과 기능을 수립해 나갔다. 가장 주요한 역할은 당연힌 새로운 제품의 다양한 경험이 이루어줘야 했다. 마치 애플스토어와 같이 전개되는 제품별로 적극적인 테스트가 가능한 상태로 전시 배치가 되어야 했다. 또한 전개되는 제품들은 우리의 플랫폼 특성상 2주 혹은 3주 단위로 교체되어야 했고 제품군도 다양했다. 이러한 다양성과 변화에 대처가 가능한 공간 구축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 중에 주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다채로운 네트워킹이었다. 단순히 고객 혹은 소비자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나 역시도 새로운 플레이어로서 공급자의 길'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길 원했다. 제품 경험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경험과 관계가 담아내길 원했다.
이와 같은 고민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구축할 수 있을 법한 설계사를 리스트업해 나갔다. 시장에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설계 사무소가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진행할 만한 프로젝트의 규모를 소화할 수 있는지 여부와 공간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결국 최종적으로 두 개의 설계 사무소가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기존의 레퍼런스는 물론 우리 플랫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의 방향성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업체로 선정되었다. 그 시점은 다행히도 성수동 공간이 확정될 때 쯤이었다.
그래서 파트너가 된 설계사와 최종적으로 선정된 설계사무소와 함께 속도를 냈다. 특히나 공간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가는 '기획설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서로간의 눈높이와 바라보는 방향을 일치시켜서 온도 차이를 줄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희망하는 공간의 컨셉과 의미를 부여해야했다.
1) 공간 구축을 위해서는 설계를 담당할 파트너가 중요하다.
2) 하지만 먼저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의 방향과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3) 설계사 기본적인 설계 능력을 검증함은 물론 건축주의 방향성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