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통쟁이 김우찬 May 12. 2022

미친듯이 버려라(환상을 버려라)

유통업, 특히 백화점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나는 백화점에서 약 14년 동안 근무를 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백화점에 입사를 했을까?경영학 전공을 살리면서 평소 마케팅/소비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유통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통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에 마음이 끌렸다. 결국 다행스럽게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백화점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 화려함에 끌려서 무작정 들어왔을 뿐 나의 까만 피부와 스타일은 백화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신입사원 교육 당시 인사 담당자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여기는 백화점 교육장이지, 건설사 교육장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 순간 교육장은 내 덕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지금은 내가 입사할 때보다 경쟁율은 둘째치고 지원자의 스펙만 보더라도 치열한 사투끝에 유통업에 당신은 발을 들였다. 당연히 축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유통업 특히 백화점 업종에 입사를 했다면 그 화려함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통업 특히 백화점에 대한 어떤 환상을 버려야 할까?


첫째, 백화점은 절대 화려하지 않다. 


정확히는 여러분이 업무를 보는 장소인 매장밖의 공간(통상, 후방이라고 칭함)은 백화점의 화려함에 가려 있을 뿐 절대 화려하지 않다. 백화점의 경우, 매장의 바닥재는 기본적으로 대리석 자재를 사용한다. 당연히 고가의 자재이지만 모든 층의 바닥을 메꾸고 있다. 하지만, STAFF ONLY라는 문을 열고 나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일단 후방의 바닥 자재는 대리석이 아니다.(보통 P타일을 사용함) 그리고, 여기 저기에는 제품 박스가 즐비하게 쌓여있고, 행사 매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분주히 이동을 하고 있다.

만약 신입사원으로 발령을 받아서 간다면, 처음에는 자리 배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좁은 내 책상 위에는 협력사에서 받은 공문과 행사용 POP로 가득할 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밖에서만 보던 유통 매장의 화려한 모습의 환상을 미친듯이 버려라. 후방이 여러분이 부딪혀서 살아가야 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둘째, 생각 이상으로 업무강도가 높다.


여러분도 사회인이라는 명함을 받기 위해서 많은 각오를 하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유통업의 업무 강도는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러하다. 

신입 매장 관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자신이 담당하는 전년대비 매출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매출은 전년 동시간대비, 일 누계로 까지도 디테일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을 하는 상급자가 있다면 매출에 대한 압박을 할 것이다. 이때는 사전에 전년을 기반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숙련함을 익혀 나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각 브랜드 혹은 매장별로 꼼꼼하게 살펴보고 지속적인 소통을 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매장의 고객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유통 매장에는 다양한 고객들이 찾아오고, 다양한 상품들이 팔려 나간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컴플레인이 발생하며,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도 여러분의 몫이다.(이 부분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이 정신적인 어려움만 있는 게 아니다. 매장 관리자라면 남녀 구분없이 매대를 끌고 박스를 날라야 한다. 보통 목요일 폐점을 하게 되면 백화점별 대형 행사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행사가 종료된 매대가 빠짐과 동시에 새롭게 펼쳐지는 매대가 배치가 된다. 몇 대도 아니고, 수십대의 커다란 매다가 밀쳐대며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상황을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갑을관계는 옛날 이야기다.


어느 상권에 신규 오프라인 매장(백화점 및 마트 등)이 들어서면 그곳은 한동안 물반 사람반이라고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렇기에, 협력사들은 앞다퉈서 매장에 입점을 해서, 좋은 자리를 할당받고 행사 매대를 운영하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펼쳤다. 나의 선배들의 넋두레를 떠올려보면, 그 시절 매장 관리자는 명절때만 되면 협력사로 부터 받는 금품으로 주머니가 두둑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것은 1980~90년대의 애기다. 그 시절의 막바지에 세상의 빛을 보았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시절의 옛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 이전 부터 오프라인 매장의 고객은 나이를 먹어가고 전개하는 브랜드들 역시도 노후화 되어 갔다.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발길은 줄어들고 신흥 상권으로의 이동이 활발해 졌다. 결국, 대형 브랜드 중심으로 유명 상권에 메가스토어를 운영하고 자체 온라인몰로 확장하면서 오프라인의 악순환은 커져만 갔다. 당연히 협력사와 업무를 진행하는 오프라인 담당자들의 협상력은 약해져 갈 수 밖에 없었다.특히, 명품 매장의 경우에는 일반 매장의 마진(20~30%내외)보다 훨씬 낮은 마진(10%내외)을 내면서도 모시기 위해서 인테리어 비용도 백화점에서 모두 부담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오프라인 매출 규모는 이미 온라인에 역전당한지 오래다. 고객은 각자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에만 방문을 하지 그곳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채널이라고 찾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코 주눅 들 필요는 없다. 협력사와는 대등한 파트너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명확한 근거와 자신감만 잊다면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 들어온 당신은 미친짓을 한 것이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 낯설고 힘든 업무라도 그 속에는 서로간의 격려와 보람이 있다. 돌담장의 틈새에서 피어난 예쁜 꽃을 본적이 있는가? 그 틈새를 비집고 나와서 꽃을 피오기까지 그 어린 생명은 견디고 견뎠을 것이다. 스스로의 생명력을 믿고 말이다. 그리고, 그 틈새로 스며든 빗방울과 따사로운 햇살도 있었다. 여러분도 미친척하고 버텨라. 무작정 버티기만 하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하되 즐거움을 찾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프라인, 미친 짓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