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저씨 Apr 20. 2020

코로나19가 호출해낸 경제학자, 케인즈

당신이 모르는 과거의 4월21일

과거로부터 배우는 오늘 : 위하고 알새과오

목차

일제강점기에도 과학의 날이 있었다!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하여 지정된 국가기념일입니다.

그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4년에 과학자와 주요 인사들이 ‘다윈’의 사망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고 매년 민족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대중적 행사를 벌이다가 해방 후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에 이르러 산업개발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1967년 4월 21일에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였고 1968년부터 그 설립일인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새롭게 정했습니다. 증기기관과 전기로 대표되는 서구의 1, 2차 산업혁명보다 훨씬 늦게 과학기술 진흥에 나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 속에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참여하며 ICT 강대국이 되었고, 현재는 ICT의 ‘초융합’이라 할 수 있는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기초 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입니다.

세계의 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위상에 걸맞게, 이제는 기초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이 줄줄이 탄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19가 호출해낸 경제학자, 케인즈

생각할수록 아이러니입니다.

인공지능까지 만드는 첨단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등생물인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습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경제대국들이 90년 전 대공황보다 더 극심한 경제쇼크를 겪으며 그 시절 경제학자 ‘케인즈’를 호출하고 있습니다.

70여년 전 사망한 경제학자를 긴급하게 호출해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대공황 당시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전통 경제학이 힘을 잃었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부족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세계는 지금 그의 주장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속에서 무리하게라도 재난기본소득 등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수요를 창출하여 위기를 돌파하려고 합니다. 그의 주장이, 혹은 그에 기댄 위기 극복 방안이 적절한가를 논하기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론이 그때는 틀렸더라도 지금은 맞기를 바라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심리이니까요!


프랑스의 여성 투표권이 가장 늦었다?

프랑스는 일찍이 17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진다"로 시작하는 인권선언문을 채택한 국가입니다. 또한 우리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선 1848년에 보통선거를 실시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1944년 4월 21일에 이르러서야 참정권을 얻어 이듬해인 1945년 4월29일에 처음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뉴질랜드(1893), 핀란드(1906), 독일(1919), 영국(1928), 미국(1920) 등 다른 서방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늦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도 타 유럽 국가들처럼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급진당이 주도했던 상원에서 ‘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보수주의 후보들에게 몰표를 줄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계산 하에 거부해버린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표 때문에 피로 얻은 혁명 정신까지 버리는 정치의 세계, 그곳에는 선진국 후진국의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해방 후 실시된 1948년 5월10일 총선거부터 여성들이 참여했습니다.



오늘은 마크트웨인의 명언처럼!

‘마크 트웨인’은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로써 ‘미국 문학의 링컨’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불립니다.

가난한 개척민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인쇄소 식자공, 미시시피강 수로안내인 등의 일을 하면서도 엄청난 독서로 독학하며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말년에 자식과 부인을 먼저 보내고 우울해하며 “혜성과 함께 왔으니 혜성과 함께 떠나고 싶다”고 했는데, 실제로 1835년 핼리 혜성이 지구로 근접한 해에 태어나서 1910년 혜성이 다시 지구로 근접한 다음날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떠난 그는 익살과 유머가 넘치는 많은 명언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명언을 응원 삼아 4월 21일 오늘 하루를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을 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살아라, 이 세상이 천국인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곡우에 비가오니 코로나19도 걱정 없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