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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PD Aug 19. 2024

나만의 것


남편이 가져서는 안 되는 취미     


 가정이 있는 남자가 가지면 곤란한 취미들이 있다. 카메라, 오디오, 자동차 같은 것들이다. 일단 기본 장비를 사는데 돈이 많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그렇게 들인 돈에서 끝나지 않는다. 딸린 액세서리들이 무한정 많다. 부속 장비라고 싸지도 않다. 더 큰 문제는 하나를 산다고 거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사놓고 쓰다 보면 더 좋고 비싼 것이 눈에 들어온다. DSLR이라고 부르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저렴한 입문용 세트를 구비하는데도 2~3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조금 쓰다 보면 더 멀리 찍을 수 있는 망원렌즈나 더 넓게 찍을 수 있는 광각렌즈 같은 것들이 필요해진다. 괜찮은 놈들은 하나에 수백만 원씩 돈이 든다. 하나 사고 또 사고를 반복한다. 사진에 익숙해지면 더 나은 카메라를 갖고 싶어진다. 슬슬 하이엔드급 라이카 카메라가 눈에 밟힌다. 렌즈 없이 바디만 천만 원 이상 줘야 한다. 렌즈도 괜찮다 싶으면 천만 원이 넘어가는 브랜드다. 시작은 미미해도 그 끝이 심히 창대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오디오는 좀 듣는다 하면 수억씩 돈이 들어간다. 장비 값만 그렇다. 앰프, 스피커, 플레이어 등 궁합에 맞춰 수없이 많은 것들을 실험한다. 업그레이드가 끝이 없다. 나중엔 더 나은 음악을 듣기 위해 집을 고친다. 방음시설을 하고, 스피커의 각도에 맞게 방의 구조를 바꾼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다. 구매 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조금 타다 새 차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많다. 차의 성능을 올리는 튜닝에 취미를 가져도 온갖 돈이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 한 몸만 건사해도 되는 남자들이라면 자기 멋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밥 먹을 돈으로 렌즈를 산다면 문제 아니겠는가. 가세가 기우는데 취미에 미쳤다면 큰일이 난다.          



남자의 시계     


 시계를 취미로 가지는 것도 곤란하다. 남자 시계가 다양해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옛날엔 배터리로 움직이는 튼튼한 쿼츠시계를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차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좋은 시계는 결혼할 때 하나 사는 예물정도였다. 롤렉스, 오메가 정도면 평생을 두고 쓸 최고급 시계로 생각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남자도 패션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사실 남자들에게는 액세서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나이 지긋한 남자가 보석이 박힌 귀걸이나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러니 자잘하게 돈을 쓰지 않고 시계에 집중해서 돈을 쓰게 된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라면 비싼 시계를 살 필요가 없다. 시간은 핸드폰이 더 정확하다. 좋은 시계를 찾는 남자에게 시계는 시간을 표시하는 기계가 아니다. 고급시계는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백년 넘는 노하우가 쌓인 기술의 결정체다. 그리고 그 섬세한 부품을 장인이 손수 조립을 한다. 기술적 완성도가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귀한 물건이다. 주변에서 백년이 넘게 공방을 운영하고, 예술의 경지에 오른 물건을 떠올려 보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작품이 얼마나 귀한 것일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시계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몇 만 원짜리 디지털시계도 있지만 수억을 호가하는 최고급 명품도 있다. 시계가 한참 유행을 하니 브랜드 등급 논쟁이 생겼다. 가장 고급인 1티어(tier)부터 아래로 등급을 매긴다. 평가하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티어에 거의 빠지지 않는 두 개의 브랜드가 있다. 파텍 필립(Patek Philippe)과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다. 파텍 필립은 가장 저렴한 칼라트라바 모델이 5천만 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입문용 모델인 패트리모니는 최소 3천만 원 후반대는 생각해야 한다. 수십 개의 명품 브랜드가 등장하는 이 분류에서 롤렉스는 3등급 정도로 취급된다. 수백만 원을 줘야 사는 전통의 예물시계가 2등급에도 못 끼는 것이 남자 시계 시장이다. 고가품이다 보니 마케팅도 교묘하고 촘촘하게 되어 있다. 저 정도 돈을 쓰게 하려면 보통 유혹으로는 불가능할 일이다. 유명인들이 미디어에 나올 때 초고가 시계를 차고 나온다. 잡지엔 그 시계만 차면 당장 재벌가 자제로 보일 것만 같은 이미지의 광고들이 줄지어 나온다. 패션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눈이 돌아가고도 남는다. 저걸 차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함을 심는다. TPO, OOTD라는 그럴 듯한 말로 상황에 맞는 여러 개를 사게 유혹하는 것은 덤이다.          



개발의 편자     


 시계에 관심이 없었다. 매일 험한 데에 가서 촬영하는 일에 고급시계는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결혼할 때 예물시계도 하지 않았다. 그게 뭐 필요하겠나 싶었다. 이렇게 방송 제작으로 한참을 바쁘게 살다가 업무가 바뀌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었다. 복장도 아무렇게나 갖출 수 없었다. 상황에 맞게 입을 수 있도록 옷과 액세서리를 갖춰야 했다. 쇼핑을 할 여러 핑계들이 생겨난 셈이다. 평생 입지 않던 옷도 사야하고, 쇼핑할 시간도 생겼으니 얼마나 절묘한가. 한꺼번에 큰돈을 쓸 일은 별로 없어도 자잘한 쇼핑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가던 길 끝에 시계가 떡 하니 있었다. 이름이 좀 알려진 시계 중에 월급쟁이가 편히 살 수 있는 것은 없다. 파텍 필립은 귀족이나 차는 시계다. 월급쟁이가 손목에 자동차 한 대, 빌라 한 채를 얹고 다니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렇다고 몇 달 치 월급을 탈탈 털어서 사야 하는 롤렉스가 만만할 리 없다. 그림의 떡들이다. 사도 개발의 편자 신세를 면하지 못 할 것이다. 시계‘만’ 명품인 꼴은 상상만 해도 민망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계에 대한 관심을 놓진 못 했다. 정장을 입는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시계를 차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찾은 대안은 빈티지 시계였다. 가까이는 20년, 멀게는 40~50년 정도 전에 만들어진 물건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화려한 시계와 달리 단순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이 많다. 다행히 내 취향과 잘 맞았다.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이어서 독특한 매력을 갖출 수 있었다. 오래 된 물건이니 당연히 가격도 지불할 만큼은 됐다.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라는 인간까지 합리적이지는 못 했다. 살만한 가격이라는 생각에 하나면 될 것을 두 개 세 개 사들인 것이다. 점잖은 시계를 사 보니 반팔 티셔츠를 입을 때 어울리는 시계도 사고 싶어졌다. 갈색 밴드의 시계가 있으니 블랙 밴드의 시계도 있었으면 했다. 예쁜 색 숫자판을 가진 시계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개발의 편자, 명품시계를 계속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었다.      


    

예지동의 시계장인들     


 뭔가 특별한 것이 가지고 싶었다. 지갑이 얇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만의 시계를 만들기로 했다. 빈티지 시계를 사고 수리하면서 서울에 수많은 시계 장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로 4가 인근 예지동에 가면 못 할 것이 없다. 헌 시계를 새 것처럼 광을 낼 수 있다. 모든 부품을 분해해서 이상이 없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원하는 대로 색을 바꿀 수도 있다. 가죽 줄을 금속 줄로 바꿔 맞출 수도 있다. 백화점이나 해외의 수리점에 맡기면 수십, 수백만 원 들 일을 몇 만 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 한국사람 솜씨 좋은 것은 세계가 안다. 예지동 장인들의 능력치는 세계구급이라고 장담한다. 이러니, 내가 원하는 시계를 만들려면 방향만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미국에 부로바(Bulova)라는 시계 메이커가 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지만 내 아버지 세대에는 예물시계 대접을 받은 브랜드다. 그 당시엔 롤렉스와 거의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었다. 이 중 날짜와 요일이 모두 나오는 모델을 슈퍼세빌이라고 부른다.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바꾸리라. 중고시장을 뒤져서 괜찮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쯤 검색했을까, 줄도 없고 시간도 맞지 않으니 저렴하게 가져가라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당장 주문해서 받았다. 너무 낡아서 케이스에 흠집도 많고 시계의 흰 판도 얼룩져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계를 들고 예지동으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리점 문을 열었다. 시계를 받은 사장님은 뚜껑을 열고 상태를 살폈다. 장치 자체엔 이상이 없단다. 너무 기뻤다. 바로 원하는 바를 말했다. “겉은 황동(사장님은 ‘신쭈’라고 표현했다)으로 도금해주십시오. 글자판은 짙은 초록색으로 칠해주십시오. 부품을 모두 분해해서 수리(오버홀(overhaul)이라고 한다)해주십시오. 시간이 맞지 않으니 그것도 잡아주십시오.” 얘기를 다 들은 사장님은 이걸 얼마 줬냐고 되물었다. 가격을 듣더니 그것보다 수리비가 더 나올 것 같은데 괜찮냐고 했다. 당연히 괜찮았다. 그렇게 수리를 맡기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돌아왔다.

 수리를 하는 동안 난 시계줄과 버클을 구매했다. 고급시계에 맞게 악어가죽을 쓰고 싶었다. 시계판을 짙은 초록색으로 한 만큼, 줄도 같은 색으로 맞추고 싶었다. 국내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다. 또 세계의 인터넷을 이 잡 듯 뒤졌다. 시계의 사이즈에 맞으면서 색상과 재질까지 맞추긴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베트남 매장을 발견해 주문했다. 시계 버클도 원래 브랜드 것을 쓰고 싶었다. 부로바 부품을 파는 곳을 찾아 사이즈에 맞는 금색 버클을 주문했다. 며칠이 지났다. 장인의 손길은 역시 달랐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시계가 완성되었다. 멀리서 온 줄과 버클까지 채우니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세미 정장 스타일에도 어울리고 캐주얼 복장에도 맞추기 좋은 시계가 완성되었다. 너무 기뻤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시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우라     


 어찌 보면 참 쓸 데 없는 짓을 한 것도 같다. 시계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 그래도 저 시계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하며 애정이 생겨버렸다. 소유욕으로 촉발된 일이었지만 결이 다른 애정이다. 시계를 리폼하며 창작의 즐거움을 느꼈다. 기성품에 손을 좀 댄 것뿐이지만, 꽤 많은 영감을 짜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시간도 맞지 않고 흠과 얼룩으로 덮인 시계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쓸 데 없는 짓이 모여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되었다. 그 결과물이 예술작품은 아니지만, 내겐 아우라가 느껴진다. 기술복제시대에 만들어진 대량 생산물이 역으로 새로운 오브제로 재탄생된 것이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들으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말한 아우라(Aura)의 정의와 너무도 들어맞는다.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작품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이다. 그 유일무이함은 복제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예술적 완성도를 떠나서, 내 시계도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자체로 내게 귀한 아우라를 느끼게 해준다. 어설픈 창작자가 대량생산된 부품들을 모아 남의 기술을 빌려 만든 시계다. 내 노력에 눈이 멀어 과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만들어 낸 아우라가 나 스스로를 이처럼 만족시키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내 안의 속물근성     


 나만의 시계를 가졌다고 내 속물근성이 없어질 리는 없다. 지금도 가끔씩 그 멋진 편자들을 쳐다보면서 헛된 꿈을 꾼다. 머리로는 당치 않음을 안다 해도 마음에서 나오는 욕망을 다 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저 시계를 만들면서 느꼈던 설렘은 지금도 기억난다. 시계를 찰 때마다 세상에서 유일한 것을 가진 뿌듯함이 느껴진다. 내가 사들인 시계들을 다 처분한다 해도 저 놈 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저 노력을 들인 이후 시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세상에는 좋은 것, 예쁜 것이 너무 많다. 아마 앞으로도 멋진 시계를 꼼꼼히 뜯어보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 가끔은 괜찮은 시계를 살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빚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즐기는 재미가 있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앞으로도 욕망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욕을 부릴 생각도 없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 속물근성과 적절히 타협하며 내 길을 갈 것이다.







<그 남자의 속물근성> 본편 글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다음주 나가는 글에서 정리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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