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예방학’의 첫 번째 백신, 삶을 지탱하는 정성적 기술들
현대 건축의 거장 루이스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고 말했다. [1] 이 명제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발명품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자전거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자동차가 있는 시대에 왜 굳이 자전거냐고 묻지만, 자동차는 고장이 나는 순간 외부 전문가에게 삶을 의탁해야 하는 ‘의존의 상자’가 된다. 동시에 그것은 집 안에서 곧장 바깥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생략한 ‘단절의 수단’이기도 하다.
반면 자전거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오직 두 바퀴로 기립 이동한다는 본질에 충실하다. 스스로 고쳐 쓰는 것을 전제로 탄생한, 자생의 시대가 남긴 가장 정직한 도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자전거들은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어 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거나 체인이 이탈한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세대에게 자전거는 더 이상 독립의 수단이 아니라 처치 곤란한 짐이 된다.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어딘가로 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을 사회 속 특정한 좌표에 스스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주체적인 이동권을 상실한 개인은 결국 고립의 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당근’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플랫폼 생태계 속에 살고 있다. [2] 전등 교체부터 반려견 돌봄까지,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면 즉각적인 연결이 이루어진다. 이는 1.5세대의 고립된 간극을 메우는 혁신적인 완충지대이자, 새로운 형태의 마을 정자다.
특히 플랫폼 안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무료 나눔’은 인상적이다. 내게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물건을 조건 없이 이웃에게 건네는 행위는 현대판 동구 밖 나눔이며, 파편화된 개인들을 잇는 정서적 실핏줄이 된다.
그러나 이 따뜻한 나눔의 이면에는 ‘문고리’라는 차가운 경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나눌 수는 있지만 관계는 피하고 싶은 시대를 산다. 직접적인 대면이 주는 피로를 피하기 위해 문고리에 물건을 걸어두고 비대면으로 안도하는 행위는, 나를 숨기면서도 최소한의 연결만은 유지하려는 1.5세대의 최후 방어선이다. 나눔의 온기는 필요하지만 관계라는 침범은 두려워하는 이 모순된 심리야말로, 현대 사회예방학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가장 날카로운 풍경이다.
과거의 마을에는 동구 밖 정자에 앉아 “부쩍 커서 내려오누나” 하고 말을 건네던 어른들이 있었다. “누구냐”는 물음에 “재(栽) 자 득(得) 자 막내입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나의 조부와 부모, 그리고 그들이 심어온 삶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름의 무게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던 이 투명한 공간 자체가 마을의 예방학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름에 담긴 삶의 무게를 이웃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사회를 선택했다. 누구의 아들인지, 어떤 삶을 심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편리해 보이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우리를 지켜주던 거대한 정서적 요새를 잃었다.
아파트의 담장이 높아지고 CCTV가 촘촘해질수록 [3] 역설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던 사회적 시선을 상실했다. CCTV는 사건의 흔적을 기록할 뿐, 무너진 공동체의 마음을 수리하지는 못한다. 기계적 감시에 안전을 의탁할수록, 살아 있는 이웃의 눈은 조용히 감긴다. [4]
인구 소멸의 시대, 학교는 이제 미적분 공식만큼이나 전등 교체와 자전거 정비 같은 정성적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미적분이 추상적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도구라면, 어두운 방에서 스스로 전등을 갈아 끼우고 빠진 체인을 다시 거는 행위는 삶의 균열을 직접 메우는 구체적인 근력이다.
문고리 너머로 숨어버린 개인이 이러한 최소한의 생활 역량마저 잃었을 때, 플랫폼의 얇은 연결은 결코 그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다. 비어 가는 교실이 실질적인 생존 기술을 배우는 방역 기지가 될 때서야, 학교는 소멸 시대의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는 마지막 사회적 거점이 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수리할 줄 아는 개인들이 늘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립된 섬들을 잇는 진정한 동행을 시작할 수 있다.
[1]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근대 건축 이론의 핵심 원칙으로, 장식이 아닌 기능과 목적에서 형태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본문에서는 자전거의 설계 철학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2] 플랫폼 기반 지역 커뮤니티(예: ‘당근’)
지역 기반 중고 거래·생활 연결 플랫폼 전반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전통 공동체 해체 이후 등장한 새로운 완충 공동체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3]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범죄예방환경설계 이론. 물리적 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 가능성을 낮추는 접근이나, 본문에서는 정서적 유대를 약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4]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
주민들의 일상적 존재와 시선이 형성하는 자생적 감시와 안전망을 뜻하는 개념으로, 기계적 감시와 대비되는 공동체 기반 예방 메커니즘이다.
사진_충남 공주시 신영리 정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