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대화

질문의 역전, AI를 리드하는 법

by mookssam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프로야구, 88 서울올림픽등 마스코트 캐릭터 도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농협은 마스코트로 '토끼'를 채택했고, 묵샘이 소속된 기획사는 그 캐릭터의 실질적인 개발을 맡았다. 이미 결정된 '토끼'라는 소재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획의 맥락에 딱 들어맞는 최적의 형상을 소환하는 데 있었다.


지금처럼 클릭 한 번으로 수만 개의 이미지를 띄우는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고되거나 막막하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 일이 비는 시간마다 회사에 비치된 디자인 서적들을 꼼꼼히 파헤쳐 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의 AI처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쏟아내지는 못해도, 회사의 보배와 같은 책들 중 어느 페이지의 어느 부분에 내가 원하는 토끼가 숨어 있는지는 내 '감'이 먼저 알고 있었다. 시니어 디자이너의 지시가 떨어지면,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기억의 지도'를 따라 정확한 위치의 자료를 소환해 종이태그로 표시하며 자료를 찾았다.


당시 주니어였던 내가 시니어의 지시를 인지적으로 명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AI는 대화 도중 맥락이 꼬이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탈하곤 한다. 이 인지적 격차 때문에 지금 내가 AI와 나누는 대화는 그때보다 훨씬 더 치열한 '현재진행형 다큐멘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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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디자이너(한태원), 쥬니어 디자이너(묵샘)


시니어의 직관과 의인화된 인터페이스


내가 AI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단순히 기계를 인격체로 대우하기 위함이 아니다. 프로젝트의 개발 방향을 설계하는 시니어로서, 나의 사유를 정교화하기 위해 '대화'라는 가장 익숙한 소통 방식을 빌려온 것이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는 AI가 스스로 답을 내놓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던진 맥락 안에서 그가 가져온 자료를 검토하고 다시 방향을 지시하는 나의 주도적 행위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지적 보완을 위한 '질문의 역전'


AI는 80년대의 나처럼 시니어의 의중을 스스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AI에게 단순히 자료를 찾아오라고 명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만든다. AI가 맥락을 놓치고 꼬일 때마다 'Remember'라고 다그치며, 오히려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함으로써 내가 놓치고 있는 학술적 근거나 데이터의 빈틈을 스스로 찾아내게 유도한다. 이 '질문하게 만들기'는 AI의 부족한 인지 능력을 보완하여 기획의 심도를 높이는 나의 주도적 장치다.


질문에서 대화로, 사유의 연속적 공정


'질문은 사고를 열지만, 대화는 사고를 유지한다'는 통찰은 8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농협 토끼 캐릭터를 개발할 때 이미 내 '감'이 가리키는 자료들을 토대로 수정을 거듭하며 기획을 완성했듯, AI가 가져온 데이터와 그가 나에게 던지는 역질문은 내 사고의 다음 단계를 감당하기 위한 새로운 재료가 된다. 나는 그 응답을 되돌려 보고 맥락을 수정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결국 이 끝나지 않는 대화는 프로젝트를 완결하기 위해 자료를 매개로 내 논리를 단단하게 다듬어가는 '사유의 공정' 그 자체다.


80년대 주니어 인턴시절 시니어의 의중을 꿰뚫던 나의 '감'은, 이제 맥락을 놓치는 AI를 가르치고 그로부터 질문을 끌어내는 '통제된 사유'로 진화했다. 도구의 한계를 인간의 주도성으로 메우는 것, 그것이 끝나지 않는 대화의 실체다.


[AI와의 대화 스킬: Core Prompting Skills]

Context Injection: 구체적인 상황과 배경 지식을 주입하여 AI의 이해도를 높이는 기술.

Iterative Refinement: 대화의 반복을 통해 사유의 결과물을 정교하게 다듬는 공정.

Role-Reversal Prompting: AI에게 역질문을 유도하여 인간의 사유를 확장하는 기술.

Context Retention (Remember): 핵심 맥락이 이탈하지 않도록 고정하고 제어하는 명령.



이미지 출처메인컷_생성형 AI본문 컷_농협협동조합 역사(나무위키)



작가 소개: 꼴을 사유하는 디자이너

한글의 자형인 '꼴'에 대한 집요한 사유를 통해 형태철학의 지평을 열고자 합니다. 시니어의 지혜, 청소년의 가능성, 그리고 창의력의 본질 등 삶의 궤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꼴'을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 이끌림, 즉 '왜 꼴에 끌리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에 답하며 인간의 형상과 내면의 일치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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