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이 생긴다는 것에 대하여
1.5세대라는 말을 듣고, 나는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 말이 무엇을 정확히 규정하는지보다, 왜 그런 말이 우리 시대에 필연적으로 필요해졌는지를 깊이 생각했다. 통계와 제도라는 촘촘한 그물망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삶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삶들은 제도의 가장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조용히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개인을 숫자로 다뤄왔다. 가구, 연령, 혼인 여부, 소득 구간 같은 분류 속에서 한 사람의 복잡한 삶은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언제나 그 경계들 사이에 놓여 있다. 혼자 살아도 고립되지 않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일방적인 보호 대상이기보다 여전히 사회의 유기적인 일부로 기능하고자 하는 상태. 이 글은 바로 그런 장면들을 기록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 설명되지 못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 충분히 쌓였다는 증거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생경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삶의 방식이 뒤늦게 언어를 얻는 과정에 가깝다. 이름은 없던 현상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이미 존재하던 현실을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들 뿐이다.
이 브런치북은 누군가를 규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새로운 집단을 선언하거나 또 다른 경계를 긋기 위한 시도도 아니다. 다만 이미 살아지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불리지 못한 상태를,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바라본 기록이다. 이름을 붙이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동시에, 이름 없이 방치하는 일 역시 하나의 선택이며 책임이다.
제도는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제도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않는다. 제도가 개인의 실제 삶을 따라오지 못할 때,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수면 아래에서 축적된다. 이 글들이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더 늦기 전에 사회에 던져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고 믿는다.
혼자 살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도움이 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의 ‘꼴’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선 기록이다. 아직 완전히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삶을, 섣불리 정의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페이지다.
끝으로, 이 서툰 질문의 여정에 기꺼이 동행하며 마음을 나누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1.5세대라는 생경한 단어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신 여러분의 시선 덕분에, '나'라는 개인의 기록은 비로소 '우리'라는 사회적 문장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삶의 꼴'을 빚어가고 있을 모든 동행자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소망한다.
mook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