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작은 틈

오스트리아 그라츠 무어강의 다리와 언덕 위 시계탑

by mookssam

그라츠 언덕 위의 시계탑(Uhrturm)

우리는 대단한 사건에서만 깨달음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고의 전환은 일상의 아주 작은 틈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 익숙한 장소, 반복되는 동선 속에서 어느 순간 시선이 멈출 때가 있다. 그 짧은 멈춤이 관찰을 다시 작동시키고, 다시 작동한 관찰이 해석을 바꾸며, 해석이 바뀌는 자리에서 아하가 발생한다. 아하는 감정적 번뜩임이 아니라, 관찰과 해석의 구조가 전환될 때 나타나는 인지적 변화다.


나는 자녀들이 있었던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갈 때마다 무어강 위 인공섬 Murinsel을 지나쳤다. 여러 번 보아온 공간이라 구조를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페, 공연 공간, 보행 다리 정도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를 나서는 순간, 둥근 통 같은 구조물에서 아이가 미끄러지듯 밖으로 튈 듯이 내려오는 장면을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식 요소인가 싶었지만, 가까이에서 다시 보니 그 통은 위쪽의 또 다른 공간과 연결된 통로였다. 여러 번 지나친 장소였는데도 나는 그 구조를 단 한 번도 인지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 순간 명확해졌다.

IMG_5405.jpg 무어강 위 인공섬(Murinsel)

Murinsel의 내부 구조를 다시 확인해 보니 그 장면은 설계 의도와 정확히 일치했다. 상부에는 실제로 그물 구조(Netzkonstruktionen)와 미끄럼틀 형태의 통로(Rutsch-ähnliche Durchgänge)가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이 그 위층을 오가며 놀 수 있는 어린이 놀이영역(Spielbereich für Kinder)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공간은 카페와 공연 공간 사이에 배치되어 있지만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카페나 다리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방문자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숨겨진 통로(versteckte Wege)와 둥근 관 형태의 구조물(geschwungene Röhren)이 얽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치 아무 곳에서나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구조는 처음부터 존재해 왔지만, 나의 관찰은 그 층위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하는 바로 이런 순간, 이미 존재하던 구조를 ‘처음으로 보게 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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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위 천정 공간에 설치한 놀이터 | © 2025 Wolfgang Thaler

이 경험은 아하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보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공간과 사물의 기능은 처음부터 드러나 있지만,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처럼 작동한다.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구조는 시야가 한 번 열리면 즉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드러남은 공간 전체를 다시 해석하게 만든다. 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관찰의 재배치이며, 해석의 구조가 다시 구성되는 순간이다.


아하는 작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관심이 의문을 만들고, 의문이 질문을 만들고, 질문이 관찰을 다시 작동시키며, 관찰은 해석을 변화시킨다. 무어강에서의 경험도 같은 구조였다. '왜 아이가 저기서 나올까?'라는 단순한 의문 하나가 관찰의 방향을 바꿨고, 그 바뀐 관찰이 숨겨진 구조를 드러냈다. 아하는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관찰이 맞닿는 순간의 결과다.


AI 시대에도 이 구조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예전에는 의문을 해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질문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건강, 설계, 구조, 기원, 운동 등 대부분의 궁금증은 즉시 연결된다. 질문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아하의 발생도 쉬워졌지만, 질문할 마음이 없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지나치고, 어떤 사람은 멈춘다. 아하는 이 ‘멈춤’에서 시작된다.


결국 아하는 일상을 다시 작동시키는 기술이다. 내가 여러 번 지나쳤던 Murinsel의 구조처럼,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숨어 있는 수많은 통로와 구조가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관찰할 의지와 질문할 마음이다. 아하는 특별한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모든 장면이 준비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작은 호기심과 세 가지 질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일까?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질문들은 일상의 구조를 다시 작동시키는 기본 도구다.


작은 관찰의 전환이 사고의 방향을 바꾸고, 사고의 방향이 바뀌면 결국 하루의 의미가 달라진다. 아하는 삶을 새롭게 만드는 조용한 기술이며, 그 기술은 일상의 작은 틈에서 언제든 작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라츠에는 또 하나의 ‘아하’가 있다.

그라츠 언덕 위의 시계탑(Uhrturm)은 독특하게도 시침과 분침의 크기가 서로 바뀌어 있는 시계로 유명하다. 멀리서 시간을 알아보기 어려웠던 옛 시민들을 위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도록 시침을 크게 만들고, 분침은 작게 설계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시계지만, 그 안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을 위한 설계의 배려가 숨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시계를 보면 전혀 다른 구조가 보인다. 아하는 바로 이런 순간에 생긴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다시 보는 순간’, 세계는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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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츠 언덕 위의 시계탑(좌)과 시내 전경(우)

사진_mook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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