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왜 이동 중에 튀어 오를까?

by mookssam

정지된 몸을 깨우는 흐름의 미학


저는 강의 중에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길을 나서면 그곳에 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몰입이 책상 앞의 고요 속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작 꽉 막힌 사유의 물꼬가 터지는 순간은 목적지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이동'의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정지된 사유를 깨우기 위해 선택한 곳은 목욕탕이었고, 뉴턴이 중력의 실마리를 찾은 곳은 연구실이 아닌 사과나무 아래였습니다.


이동은 단순히 공간의 점유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굳어있던 뇌의 지각 선택성을 흔드는 작업입니다. 뇌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는 에너지를 아끼려 잠들지만,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변화하는 리듬 속에서는 비로소 경계심을 풀고 흩어진 정보들을 자유롭게 연결하기 시작합니다. 정체된 생각에 새로운 풍경이 수혈될 때, 뇌는 비로소 '아하'라는 도약을 준비합니다. 이러한 정신적 휴식이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한다는 점은 인지심리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1]


태도가 만드는 관찰, 몰입이 만드는 '정지'


현장학습을 기획할 때 저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관람 그 이상의 '태도'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를 마주하기 전, 저는 아이들에게 모두 교복을 정갈하게 입고 예의를 갖추자고 제안했습니다. 유럽의 바티칸 박물관이나 이탈리아의 성당들처럼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을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이 그곳엔 없었지만, [1] 저는 아이들에게 규제보다 앞서는 '경의'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대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관찰의 해상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태도가 바로 서지 않으면 1,400년 전의 걸작은 그저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하지만, 스스로를 정돈하고 마주한 대향로는 비로소 찬란한 백제의 유레카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저와의 약속을 기억하며 정지된 듯 그림을 응시하던 학생들의 모습은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찰나의 '정지'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이동 중에 얻은 수많은 자극이 하나의 정점으로 모이는 강력한 몰입의 순간이었습니다. 인간의 뇌가 자신의 목적이나 관심에 맞는 것만 선별하여 인지한다는 '지각의 선택성' 원리처럼, [1] 그 경건한 태도 속에서 학생들은 교과서 밖의 진짜 '유레카'를 만났을 것입니다.


순천만 노을을 향한 '의도된 기다림'


저는 국내외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이동의 끝에 만나는 유레카'를 설계하곤 했습니다. 순천만의 붉은 노을을 인생의 한 장면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저는 아이들에게 몇 달 전부터 그 풍경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저녁 6시, 배고픔이 몰려와 떼를 쓸 법한 시간에도 아이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산 아래 꼬막정식이라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과, 지금 이 '흐름'의 끝에 만날 경이로움에 대한 기대가 본능적 허기를 이겨내게 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저녁 시간에 맞춰 하산할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학생들은 마침내 하늘이 타오르는 찰나의 '아하'를 마주했습니다. 그 노을은 단순히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배고픔과 기다림이라는 산을 넘은 자들에게 신이 내리는 보상이었습니다. 이처럼 통찰은 멈춰있는 시간보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인내와 이동 속에서 더 강렬하게 튀어 오릅니다. 고통을 견딘 뒤에 오는 미학적 체험은 그 무엇보다 단단한 기억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스크린샷 2026-01-08 오후 6.51.31.png
스크린샷 2026-01-08 오후 7.07.39.png
2014년 순천만 노을(좌) 학생들(우)


선율을 길어 올리는 걷기의 리듬


위대한 음악가들에게도 이동은 곧 작곡의 과정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매일 오후 빈 외곽의 숲길을 산책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수첩에 옮겼고, 그 걷기의 리듬은 고스란히 교향곡 '전원'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 그는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음악적 호흡을 조절했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리듬을 악보에 새겨 넣었습니다.


말러 역시 호숫가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동의 시간 속에서 거대한 교향곡의 구조를 세웠습니다. 그들에게 길 위에서의 시간은 '방치'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사유의 집짓기'였습니다. 멈춰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산맥의 전경이, 한 걸음씩 내디디며 시야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길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일어난다"는 니체의 말처럼, [3] 아하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노력의 산등성이를 넘은 자에게, 이동과 정지의 교차 속에서 주어지는 '준비된 우연'입니다.



[1] Robbins, S. P., & Judge, T. A. (2013). Organizational Behavior. / Baird, B., et al. (2012). Inspired by Distraction. 인간의 뇌가 관심사에 따라 정보를 선별 인지하며, 이동과 같은 정신적 휴식이 창의적 통찰을 돕는다는 원리.


[2] Cooper, B. (2008). Beethoven. 베토벤이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매일 행했던 산책 루틴과 그의 스케치북에 남겨진 기록에 대한 사료.


[3] Nietzsche, F. (1889). Götzen-Dämmerung.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일어난다(All truly great thoughts are conceived by walking)."라는 격언으로, 이동이 통찰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지털 발자국, 몰입의 데이터가 길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