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토끼"에서 "질문하는 AI"까지, 사유를 완결하는 법
나는 처음에 AI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완벽한 질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질문이 정교하면 답도 정교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화가 길어질수록 AI는 매 질문마다 이전의 맥락을 온전히 이어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질문이 늘어날수록 사고는 선명해지기보다 오히려 흩어졌다.
이 경험은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검증은 질문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형식이라는 사실이었다.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만, 대화는 맥락을 유지하거나 다시 세운다. AI와의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더 날카로운 질문이 아니라, 사고가 어디에서 벗어났는지를 감지하고 다시 정렬하는 과정이었다.
80년대 내가 몸담았던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는 “서 있는 토끼”를 요구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정답으로 그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여러 시안을 놓고 대화를 거듭하며, 그들이 말하지 못한 ‘근면함’의 꼴을 함께 찾아갔다. 설득은 설명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AI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 단발성 질문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화를 이어가며 AI의 응답을 내 사고의 궤도 안으로 끌어들인다. 잘못된 답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흐름을 다시 정렬하는 데 집중한다. 이때 검증은 질문의 결과가 아니라, 대화의 과정이 된다.
현재 내가 도달한 최선의 방법은 역설적이다. AI가 나에게 질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AI가 질문을 던질 때, 나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전제의 빈틈과 사고의 누락을 발견한다. 이는 7장에서 언급한 ‘맥락 붕괴’를 방어하는 동시에, 사고의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AI의 역질문은 내 논리를 흔들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하며 내 사유를 다시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검증은 답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사유가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된다. 나는 답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조율하는 주체로 다시 돌아온다.
기술은 계속 변할 것이다. 대화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한 이 방식—질문을 넘어 대화를 설계하고, 역질문을 통해 사고를 검증하는 방식—이 현재의 AI와 나누는 가장 높은 차원의 대화라는 점이다.
도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질문의 역전으로 치환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사유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검증은 질문이 아니라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대화의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