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를 완성하려는 의지와 연결의 본질
위상이란 무엇인가: 모양이 아니라 관계의 기억
여기서 말하는 ‘위상’이란 모양의 예쁨이나 정확한 비율을 뜻하지 않는다. 위상은 형태가 조금 찌그러지거나 늘어나도, 그 안에서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변하지 않는 구조를 가리킨다. 원이 찌그러져 타원이 되어도 여전히 하나의 폐곡선으로 인식되는 이유, 컵이 눌려도 ‘컵’으로 남는 이유가 바로 위상 때문이다. 인간은 이 위상적 구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다시 붙잡는다.
형태를 강요하는 존재: 무질서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
인간은 무질서(Entropy)를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앞 장에서 중력이 우리 몸에 수직적 질서를 부여했다면, 밤하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수평적 질서를 갈망한다. 별자리는 고대인들이 하늘을 관찰하며 ‘발견’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흩어진 점들 사이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 인간의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각적 발명품이다. 우리는 형태가 없는 곳에 형태를 기입함으로써, 비로소 미지의 공간을 이해 가능한 세계로 전환한다. 형태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생성된다. [1]
선을 긋고야 마는 눈: 연속성의 법칙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 인간의 뇌 안에서는 이미 선을 긋는 작업이 시작된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말하는 연속성의 법칙에 따르면, 인간의 시각은 갑작스럽게 끊기는 배열보다 부드러운 흐름을 가진 점들을 하나의 단위로 묶으려 한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가운데 특정 별들만 하나의 형상처럼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 뇌가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이 만들어지는 순간, 무의미한 점들은 하나의 꼴로 조직된다. 형태란, 공백을 거부한 지각의 결과다. [2]
형태 이후에 오는 것: 신화라는 사후 설명
이렇게 만들어진 꼴이 반복적으로 인식되면, 인간은 그 형태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냥꾼의 실루엣이나 전갈의 꼬리 같은 시각적 구조다. 오리온과 전갈이라는 신화는 그다음에 덧붙여진 이야기다. 다시 말해 신화는 형태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뒤늦게 탄생한 서사다. 특히 하늘에서 서로 180도 떨어진 오리온자리와 전갈자리의 배치는 ‘전갈이 뜨면 오리온이 숨는다’는 도망의 이야기를 거의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서사는 형태가 만든 구조적 긴장을 인간이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해석 방식이다. [3]
변하지 않는 것의 정체: 위상적 불변성
위상학적 사고의 핵심은 외형의 정확함이 아니라, 연결의 뼈대에 있다. 별자리의 모양은 관측 위치나 계절, 대기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을 여전히 같은 별자리로 인식하는 이유는 별들 사이의 연결 순서와 관계, 즉 위상적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불변성은 변화가 많은 환경 속에서도 사물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인지적 닻 역할을 한다. 우리는 모양이 아니라 관계를 기억한다. [4]
인간은 연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인간은 형태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끊어진 세계를 그대로 두지 못하고, 점을 선으로 잇고, 선을 면으로 확장하며, 마침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 별을 잇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잇지 않고서는 그 거대한 공허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형태를 통해 세계를 소유한다. 그리고 그 소유의 방식이 바로 위상이다.
[1] Kruglanski, A. W. (1989). Need for Closure: A Psychological Perspective.
인간은 모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불확실한 상태를 빠르게 닫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심리적 동기를 지닌다는 이론.
[2] Wertheimer, M. (1923). Laws of Organization in Perceptual Forms.
인간의 지각이 개별 요소보다 연속성과 전체 구조를 우선적으로 조직한다는 게슈탈트 원리의 기초 연구.
[3] Bruner, J. (1991). The Narrative Construction of Reality.
인간은 지각된 형태와 사건을 이야기 구조로 엮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는 인지 이론.
[4] Topological Invariance (위상적 불변성).
형태가 변형되어도 연결 구조가 유지되면 동일한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위상학·인지과학의 핵심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