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누구나 살아가면서 종종 인생의 전환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제게는 1992년 겨울이 그랬습니다. 당시 학업과 디자인 기획사의 팀장 역할을 병행하던 저는 졸업 즈음, 학교로 날아온 한 장의 공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바로 디자인 교사를 초빙한다는 내용의 공문이었지요. 운이 좋았던지 같은 해 디자인 교사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저는 그렇게 고등학교의 디자인 교사가 되었습니다. 젊은 디자이너의 패기였을까요? 처음에는 실전에 통하는 디자인을 가르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 기술보다 학생들 자신의 인생을 위한 디자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스로 흥미가 있는 과목이 있거나 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단 한 명의 선생님, 또는 친구가 있다면 학교에 갈 맛도 나고 덩달아 공부할 맛도 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을 도는 삼각 패턴에 거부감 없이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남다른 학생들은 학교를 어쩔 수 없이 거쳐 가야 하는 곳으로 여기기에 힘들어하지요. 꿈이 남다른 학생, 재능이 남다른 학생, 개성이 남다른 학생!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가정에서는 귀한 아들딸들이고, 국가적으로는 위대해질 아들딸들입니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이 아이들이 이상한 학생으로 보이는 걸까요? 지난 2007년, 미술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방과 후 미술반을 개설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그 결과가 <조선일보> 1면에 ‘방과 후 수업 혁명’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고, 이를 본 EBS <최고의 교사> 팀은 저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촬영하자고 하더군요. 취재는 한 달간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보던 피디와 작가는 제가 마치 아이들의 인생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방송 제목을 ‘내 인생의 디자이너’로 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교육에서도 디자인적 사고와 문제 해결 방법을 적용하여 학생들의 진로를 디자인한다는 시선이 그리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그 시선처럼 저는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반으로 생애 진로를 디자인하고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다양한 연구를 했고 수많은 임상 교육을 실행했지요.
그 중심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적 사고와 문제 해결 방법을 적용하고자 했던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문제 해결은 개요 Brief, 연구·조사 Research, 아이디어 Idea, 모형 제작 Prototype, 모델링 Modeling의 과정을 거칩니다.
생애 디자인도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떤 재능이 있는지, 관련된 직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스스로 생애 디자인 기획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디자인하는 ‘내 꿈의 디자이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디자인을 교육과 접목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 국민대학교 김철수·정도성 교수님, 차별화된 창의력 교육을 위해 협력해 주신 중앙대학교 서혜옥 교수님, 서울대학교 박남규 교수님, 이화여자대학교 최경실 교수님, 힘들고 어려울 때도 늘 함께해 주시는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동료 교사들에게 깊은 애정과 감사를 전합니다.
2015년 7월 임경묵
Photo by Ann